8. 대쟁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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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품성과 그의 율법과 우주를 다스리시는 그의 주권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대쟁투에 관여되어 있다. 이 싸움은 선택의 자유를 부여받은 한 피조물이 자기를 높이려다 하나님의 원수 곧 사단이 되었을 때 하늘에서 시작되었고, 하늘 천사의 일부를 반역하도록 만들었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가 죄에 빠지도록 함으로 이 세상에 반역의 정신을 들여왔다. 이러한 인류의 죄는 그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그러지게하고 창조된 세계의 질서를 파괴해서, 전 세계적인 홍수 때에 무서운 황폐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 세상은 모든 피조물이 지켜보는 우주적인 싸움의 전장(한문)이 되었고, 이 투쟁에서 결국 사랑의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옹호받으실 것이다. 이 대쟁투에 가담한 그의 백성을 돕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과 충성스런 천사들을 보내사 그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구원의 길에 서 있는 그들을 지원하신다. -기본 신조, 8.

성경은 선과 악,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우주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 전 우주가 관여되어 있는 이 대쟁투에 대한 이해는 “예수님께서 왜 이 지구에 오셨는가?”라는 질문을 푸는데 도움이된다.

이 대쟁투의 우주적 개관
불가사의 중의 불가사의는 선악간의 쟁투가 하늘에서 발단된 것이다. 완전한 환경 가운데서 어떻게 죄가 생겨날 수 있었을까?
인간보다 더 높은 차원의 존재들인 천사들(시 8:5)은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나누도록 창조되었다(계 1:1, 3:5, 5:11).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시 103:20) 그들은 종 혹은 “부리는 영”(히 1:14)의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왕왕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창 18, 창 19장; 히 13:2). 죄는 이 천사들 중 하나를 통하여 우주에 들어왔다.

대쟁투의 기원. 성경은 두로와 바벨론 왕들을 루스벨에 대한 비유적 기술로 사용하여, 어떻게 이 우주의 쟁투가 시작되었는지 설명한다.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었던 “아침의 아들 계명성”은 하나님의 면전에 거하고 있었다(사 14:12; 겔 28:14).* 성경은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2, 15)라고 말한다.
죄의 발생은 불가해하며 정당화시킬 수 없지만 그 뿌리들은 루스벨의 교만에서 찾아낼 수있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겔 28:17). 루스벨은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하신 높은 지위에 만족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는 이기심을 품고 하나님과 동등되기를 몹시 탐하였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13, 14). 그러나 정작 그가 갈망한 것은 하나님의 지위였지 그분의 품성은 아니었다. 그가 움켜쥐려 한 것은 하나님의 권위였지 그분의 사랑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정부에 대한 루스벨의 반역은 그가 “대적” 사단으로 변신하는 첫걸음이었다.
루스벨이 암암리에 취한 행동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많은 천사들의 눈을 멀게 하였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정부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고 자라나서 마침내 하늘 천사의 무리의 삼분의 일이 그의 반역에 가담하였다(계 12:4). 하나님의 왕국의 평온은 깨어졌고 “하늘에 전쟁이 있”(계 12:7)었다. 그 전쟁으로 결국 큰용, 옛 뱀, 그리고 마귀로 묘사된 사단이 “땅으로 내어 쫓”겼으며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계 12:9)겼다.

인류가 이 싸움에 휘말리게 된 경위. 하늘에서 추방된 사단은 지구에 그의 반역을 확산시켰다. 사단은 말하는 뱀으로 위장하고. 자신을 타락으로 이끌었던 동일한 논증을 사용하여 그들의 창조주에 대한 아담과 하와의 신뢰심을 효과적으로 훼손시켰다(창 3:5). 사단은 하와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부여하신 처지에 대하여 불만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하게 될 수 있다는 기대에 혹하여 유혹자의 말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실과를 따먹고, 남편도 그렇게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들은 창조주의 말씀보다 뱀의 말을 더 믿음으로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신뢰와 충성을 저버렸다. 비극적이게도 하늘에서 시작된 쟁투의 씨앗들이 지구성(地球星)에 그 뿌리를 박게 되었다(창세기 3장 참조).
사단은 인류의 첫 부모를 꾀어 죄짓게 하고, 그들로부터 지구에 대한 그들의 지배권을 교묘하게 강탈하였다. 사단은 자신이 이제 “이 세상임금”이라고 주장하면서, 그의 새 본부가 된 지구성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정부와 온 우주의 평화에 도전하였다.

인류에게 미친 영향.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투쟁의 결과는 죄가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시킴에 따라 곧 확연하게 드러났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인류에게 당신의 은혜의 언약을 주셨지만(창 3:15; 본서 7장 참조), 그들의 장남 가인이 그의 아우를 살해했다(창 4:8). 사악함이 계속 증가하자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사람에 대하여,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창 6:5)이라고 말씀하실 수 밖에 없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회개치 않은 죄인들을 깨끗이 제하시고 인류를 새출발하게 하시려고 큰 홍수를 내리셨다(창 7:17-20). 그러나 오래지 않아 충성스런 노아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떠나갔다. 하나님께서 결코 다시는 홍수로 세계를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늘에 닿게 하여 어떤 홍수가 일어날지라도 피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고자 바벨탑을 건립함으로써 몹시 주제넘게도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불신을 구체화시켰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그들의 만국 공통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인간의 반역을 진압하셨다(, 11:11).
얼마 후, 거의 전 세상이 배도에 빠져갈 무렵,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세상 만국을 축복하시려고 계획하셨다(창 12:1-3, 22:15-18). 그러나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대대에 걸쳐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언약에 충실치 못하였다. 그들은 죄의 덫에 걸려, 언약의 창시자이시며 보증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써 사단이 대쟁투에서 그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에 조력했다.

우주의 극장인 지구. 우주의 각처에서 온 대표자들이 참석한 우주적 회집에 대한 욥기의 기록은 대쟁투에 대한 부가적 통찰을 더해 준다. 그 기록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욥 1:6, 7, 2:1-7 참조).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이런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사단아, 욥을 보아라. 피는 나의 계명을 충성스럽게 순종한다. 그는 완전하다”(욥 1:8 참조).
사단이, “그렇습니다만 그가 온전한 사람인 유일한 이유는 당신을 섬기는 것이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그를 보호하고 계시지 않습니까?”라고 반격하자,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온갖 방법으로 욥을 시험하도록 사단에게 허락하심으로 응수하셨다(욥 1:9-2:7 참조).
욥기가 제공하는 우주적 시각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를 마련해 준다. 이 유성은 정(正)과 사(邪)간의 이러한 극적인 쟁투가 실연(實演)되고 있는 무대이다. 성경은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켰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3). 하나님의 계명 혹은 율법을 범하는 것은 믿음의 부족이 초래하는 즉각적 결과이며 끊어진 관계의 증거이다.
그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계획으로 말미암아 순종으로 나타나는 사랑의 관계를 형성시켜 주는 창조주께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고자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사랑은 순종으로 이끈다(요 14:15).
불법이 성행하는 우리 시대에 절대적인 것들이 힘을 잃고, 부정직이 찬양을 받고, 뇌물은 생활의 한 방식이 되었고, 간음이 만연하고, 국제적이건 개인적이건 계약들이 깨어지고 있다. 우리의 절망적인 세상을 넘어 돌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이 거시적 시각은 이 우주적 대쟁투를 종결짓고 있는 우리 구주의 구속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계시해 준다.

우주적 정점들.
이 사활(死活)이 걸린 투쟁의 중추적 쟁점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정부와 율법. 우주를 결합시키고 활동을 유지시키는 자연 법칙과 같이 하나님의 도덕률은 우주의 존속에 똑같이 필수 불가결하다. 죄는 “불법”(요일 3:4) 혹은 헬라어 “아노미아”(anomia)가 지적하듯이 “무법”이다. 불법은 하나님과 그분의 정부를 거부하는 데서 생긴다. 사단은 세상에 성행하는 불법의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하나님께 그 책임을 뒤집어씌운다. 그는 자신이 전제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하나님의 율법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말한다. 더욱이 그는 그 율법은 순종이 불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피조물들의 최선의 이익에 배치된다고 비난한다. 사단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율법을 끊임없이, 교묘하게 손상시켜서 하나님의 정부,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 자신까지도 타도하려고 시도한다.

그리스도와 순종의 문제. 지상 봉사 기간 동안 그리스도께서 직면하셨던 시험들은 순종과 하나님의 뜻에 굴복함에 대한 쟁투의 심각성을 드러내 주었다.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히 2:17)이 되도록 그를 준비시킨 그 시험들을 대처하시면서 그는 불구 대천의 원수를 일대일로 대결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40일간의 금식을 마치셨을 때, 사단은 돌을 떡으로 만들어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해 보이라고 유혹하였다(마 4:3).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에덴에서 하와를 유혹했듯이, 사단은 또다시 그리스도께서 침례받으셨을때 하나님께서 하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는 말씀의 확실성을 의심하게 만들어 보려 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시려고 손으로 돌을 집으셔서 그것을 떡으로 만드셨다면, 그는 하와처럼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부족을 드러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사명은 실패로 끝났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삼으셨다. 극심한 허기를 느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단의 유혹에 대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응수하셨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패배시키려고 또 다른 시험을 그에게 던졌다. 사단은 그분에게 세상 왕국의 전경(全景)을 보여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9)고 약속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심으로써 세상을 되찾으시고, 갈바리의 고뇌를 겪지 않고서도 그의 사명을 완수하실 수 있다고 암시하였다. 예수님은 한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그리고 하나님께 대하여 절대적인 충성을 보이시면서 “사단아 물러가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대쟁투에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인 성경을 사용하시면서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고 말씀하셨다. 그의 이 말씀으로 싸움은 종결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를 계속 전적으로 의존하심으로 사단을 패배시키셨다.

갈바리에서의 결판. 이 우주적 대쟁투는 갈바리에서 가장 명확하게 초점이 맞추어졌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사명이 끝나갈 시간이 다가오자 그의 사명을 중지시키려고 격렬하게 노력하였다. 사단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특히 성공적으로 사용하였다. 예수의 인기에 대한 그들의 질투심은 엄청난 문제를 유발시켜서 결국 그분께서는 그의 공중 봉사를 끝내실 수 밖에 없었다(요 11:45-54). 자신의 제자 중 한 사람의 배반과, 조작된 위증을 통하여 예수님은 체포당하셨고, 심문을 받으시고 사형 선고를 받으셨다(마 26:63, 64; 요 19:7).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시면서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셨다.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의 혜택들은 인간의 제한된 세계 그 너머까지 미친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이제…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1),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 16:11)고 하셨다.
우주적 대쟁투는 십자가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사단의 잔인한 취급에도 아랑곳 없이 그리스도께서 사랑과 충성스러운 순종을 나타내심으로 이 세상 임금 사단의 위치는 손상되었고, 그의 궁극적 멸망은 확실하게 되었다.

예수 안에 있는 진리들에 관한 대쟁투
오늘날 그리스도의 권위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는 대쟁투는 그분의 율법뿐 아니라 그분의 말씀 곧 성경을 두고 벌어지고 있다. 신적 계시를 거의 용인하지 않거나 아예 인정하지 않는 성서 해석 방법들이 개발되었다.* 성경은 여느 고대 문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책인양 그렇게 취급되었고, 동일한 비편적 방법론으로 분석되고 있다. 신학자들을 포함하여 점점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당신의 뜻에 대한 절대 무오류의 계시로 더 이상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필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성서적 견해에 의문을 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분의 본성과 동정녀 탄생, 그리고 기적들은 큰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가장 중대한 질문. 예수께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묻느냐”라고 질문하셨을 때 제자들은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 16:13, 14)라고 대답하였다. 그 말의 뜻은, 예수님 당대의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분을 단순한 한 인간으로 간주했다는 말이다. 성경은 그 설명을 계속한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셨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5-17).
오늘날 각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물으신 동일한 질문에 직면해 있다. 생사가 걸린 이 지극히 중요한 문제에 대한 각인의 답변은 하나님의 말씀의 증언에 대한 각자의 믿음에 좌우된다.

성서 교리들의 중심. 그리스도는 성경의 초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엡 4:21)를 이해하라고 우리를 초청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진리이시기 때문이다(요 14:6). 우주적 쟁투에서 사단의 전략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없이도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시키는 것이다. 그같이 하여 진리의 여러 중심점들이 개별적으로, 혹은 복합적으로 제안되었다. 즉 (1)인간, (2)자연계 혹은 관측 가능한 우주, (3)성경, (4)교회 등이 그것이 다.
이 모든 것들은 진리를 드러내는 데 각기 나름대로 공헌하고 있지만, 성경은 그리스도를, 상기한 모든 것들의 창조주요, 그것들을 모두 초월하시는 분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것들은 모두 그것들이 유래되는 그분 안에서만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다. 성경의 교리를 그분과 분리시키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신 분에 대한 오해가 초래된다. 그리스도를 제쳐놓고 다른 진리의 중심점을 제시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질과 목적에 잘 부합된다[헬라어 원문을 참조해 보면, 적그리스도(antichrist)는, 그리스도에 “대항하는” 것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교회의 교리에서 그리스도를 다른 어떤 중심으로 대체시킴으로써 사단은 인류의 유일의 소망이신 분으로부터 주의를 돌리게 하려는 그의 목표를 달성 하고 있다.

기독교 신학의 기능. 우주적 시각(視覺)은, 그리스도께서 우주와, 그리고 진리에서 차지하고 계시는 정당한 위치를 박탈하려는 사단의 기도를 폭로한다. 하나님에 관한 학문, 그리고 그분의 피조물과 그분과의 관계에 관한 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는 신학은 모든 교리를 그리스도에 비추어 전개해야 한다. 기독교 신학의 과제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대한 신뢰심을 북돋아 주고, 진리의 중심으로 제안된 모든 다른것들을 그리스도로 대체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다할 때, 참된 그리스도교 신학은 교회에 올바른 공헌을 한다. 왜냐하면 참된 신학은 우주적 대쟁투의 뿌리에 접근하여 그것을 폭로하고, 반박할 수 없는 유일의 논증, 즉 성경 가운데 계시된 그리스도를 만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하나님은 지상에서의 사단의 활동을 저지하는 데 있어서 인류를 돕는 가장 효율적인 한 도구로 신학을 사용하실 수 있으시다.

이 교리의 중요성
대쟁투의 교리는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전쟁, 사실상 우주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는 엄청난 전쟁을 계시해준다. 성경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고 말한다.

이 교리는 계속적인 경계 태세를 유지시켜준다. 이 교리를 이해할 때 사람은 악과 싸워야할 필요를 자각하게 된다. 승리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이시요,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 24:8)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바울이 말한 바와같이 그리스도의 생존 전략을 받아들이는 데는 다음의 사항이 수반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3-18), 우리로 “넉넉히 이기”(롬 8:37)게 하신 분을 끊임없이 의존하면서 인내와 충성스러움, 항상 임전 태세를 갖춤(계 14:12)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생애를 사는 것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큰 특권인가!

그 교리는 고난의 신비를 설명해 준다. 악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지 않았다.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히 1:9)신 분은 세상의 불행에 대한 책임이 없으시다. 타락한 천사인 사단이야말로 잔인한 행위와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할 장본인이다. 우리가 대쟁투의 맥락에서 강도질, 살인, 장례식, 범죄, 그리고 사고 등을 고찰할때, 그것들(아무리 우리의 가슴을 에이게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십자가는 죄의 파괴성과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모두 증거했다. 이와같이 대쟁투의 주제는 우리에게, 죄를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도록 가르친다.

그 교리는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관심을 계시해 준다. 하늘로 귀환하시면서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들을 고아와같이 버려두지 않으셨다. 크신 긍휼 가운데서 그분께서는 악과 싸울 때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수단들을 우리에게 마련해 주셨다.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우리의 계속적인 동반자가 되도록, “그 공백을 메우시도록” 위임을 받으셨다(요 14:16; 마 28:20 참조). 천사들 또한 그분의 구원하시는 사업에 관여하도록 명령을 받았다(히 1:14). 우리의 승리는 보장되었다.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면서 소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님께서 통제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입술로 그분의 구원하시는 사업을 찬양할 수 있다.

그 교리는 십자가의 우주적 의미를 드러내준다. 인류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봉사와 죽으심에 걸려 있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버리러 오셨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분은 사단이 거짓 비방을 일삼았던 당신의 아버지의 품성과 율법과 정부를 옹호하셨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하나님의 공의와 선하심을 옹호하였고, 하나님의 율법과 정부는 공정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대한 사단의 공격이 전혀 증거가 없는 것임을 드러내셨으며,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이 매일의 유혹들로 인한 괴로움과 좌절을 딛고 일어서서 죄에 대한 승리의 생애를 살 수 있음을 보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