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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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창 12:17)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로 말도 안 됩니다. 그 여인의 아리따움에 반해 바로가 궁으로 끌어들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여인은 <아브람의 아내>가 아니라 <아브람의 누이>였습니다. 그러니 죄가 있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바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로 속인 아브람과 사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못된 짓을 꾸민 아브람을 혼내시는 대신에 애먼 바로를 혼내시니, 그것도 죄 없는 바로에게 ‘큰 재앙’(창 12:17)을 내리시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세상에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법이 결코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말입니다. 진실로 은혜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하신다는 이유,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큰 재앙’을 내리시는 대신에 도리어 사랑을 쏟아부으시는 것, 그 ‘편파적인 사랑’이 바로 은혜입니다. 애굽에서의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은혜’란 게 무엇인지 말씀하시려는 것만 같습니다.
애굽에서 아브람과 사래에게 베푸셨던 그 은혜, 바로 그 은혜를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베푸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은 편파적인 사랑을 쏟아부으시는 것입니다. 아브람 같고 사래 같은 우리에게 말입니다. 비록 아브람 같고 사래 같지만 그래도 하나님께는 우리가 ‘보배롭고 존귀’(사 43:4)한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우리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마 3:17)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사 43:4; 마 3:17)
우리를 불러 이르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기쁨으로 말씀하시는 분, 그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크신 권능과 전능하심으로 재앙 대신 도리어 편파적인 사랑을 쏟아부으시는 분, 그 사랑을 이기시지 못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당하신 분, 그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아버지, 사랑하는 하늘 우리 아버지께서 아브람 같고 사래 같은 우리를 오늘도 다정히 부르십니다. ‘사랑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내 딸아’ 눈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은혜를 베푸시려고 하루 종일 두 팔 벌려 우릴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사 30:18). 사랑하는 아버지가 부르시니, 오늘도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이 모습 이대로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하늘 우리 아버지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