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목요일 장년 교과] 품성과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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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엡 4:13).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다. “나는 바위, 나는 섬”. 이 노래 가사처럼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가? 또, “글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기 때문에 함께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 적도 있을 것이다.

에베소서 4:11~16을 읽어보라. 바울은 여기서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묘사했다. 예수님은 머리이시고, 그분의 백성은 지체들이다. 에베소서 4:13을 보면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 자라는 경험을 하는 것임을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물론 혼자서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다. 모욕과 핍박을 당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던 시기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처럼 홀로 서는 일을 피할 수 없을 때도 있다. 많은 신자들이 그들을 둘러싼 핍박 중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았던 사실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그렇지만 바울은 여기서 하나의 중요한 진리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경험은 우리가 서로 교제하며 함께 일할 때 생겨난다는 것이다.

오늘의 본문에 의하면, 바울은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 전에 무엇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하는가?

<묵상>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함을 나타내는 것과 개인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함을 나타내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대쟁투의 맥락에서 공동체의 중요성은 무엇인가?(참조, 엡 3:10).

(이어서) 혼자 있거나 낯선 사람과 있을 때 친절하기는 쉽다. 그러나 내가 잘 알거나 싫어하는 사람과 있을 때 친절하게 행동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이 말은 그런 사람들에게까지도 은혜와 친절을 베풀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교훈>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엡 4:13).

<적용>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해 그대가 속한 공동체에서 서로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영적 성장을 이루는 길 –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 마음에 생기 있고 발전하는 원칙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성령께서 계속 역사하시고 신자들은 은혜에서 은혜로, 능력에서 능력으로, 품성에서 품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영적 성장을 이룩함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된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저주를 끝내게 하시며 신자로 하여금 죄에 속한 행동이나 영향에서 완전히 해방되게 하신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395).

<기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동체를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때론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 때도 있지만 서로 양보하고 존중하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됨을 경험하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