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용서하신 것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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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민 14:20).

이스라엘 백성이 불신의 다수와 믿음의 소수로 나뉘어 싸울 때, 하나님은 가만히 계셨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다수가 믿음의 사람들인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타났습니다(10절).

용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새로 시작해 보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백성이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백성이 잘못되면 여호와의 이름이 모욕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품성이 오해를 받을 수도 있으니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주님의 품성대로 이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에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20절)로 응답해 주십니다.

뒤 끝이 있으신 하나님? 그러나 용서를 말하는 다음 문장(21절)의 첫 단어는 ‘그러나’입니다.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21절)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2절) 같다는 자신들의 말대로 그들이 광야에서 시체가 되어 엎드려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에서 용서를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뒤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서하신 것이 맞습니까?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용서는 우리의 이전 죄악의 결과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용서를 바라는 사람들의 특징은, 죗된 행동이 주는 나쁜 영향의 무서움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죄악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용서를 구합니다.

참된 용서 하나님의 용서는 이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죄를 지은 사람의 삶을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죄를 지으면, 얼마나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불신의 40일을 돌이키기 위해 고난의 40년을 허락하십니다. 자신들의 믿음 없는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 때, 자신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몸으로 알게 하십니다.

그러나 40년의 광야 생활에서도 은혜는 계속 주어집니다. 주님은 그들과 동행하십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함께 합니다. 나팔 소리는 계속 울립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이 땅의 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할지라도, 하늘 가나안은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목적입니다.

주여, 저의 죄를 사하소서, 죄의 결과를 달게 받게 하소서. 저를 돌이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