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일 일요일 장년 교과]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쟁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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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 대신 거짓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짐승을 따르는 표가 되지만 하나님을 경배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을 가진 증거가 된다.

요한계시록 기별의 핵심은 신비한 상징, 낯선 짐승, 이상한 우상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사랑의 하나님이 마지막 세대에 주신 영원한 진리를 선포한다. 그리스도와 사탄의 쟁투는 예배를 둘러싸고 하늘에서 시작되었고 그 마지막 절정 또한 예배를 둘러싼 쟁투가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4:7, 9과 요한계시록 4:11을 비교해 보라. 이 선과 악의 쟁투 가운데서 요한계시록을 관통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창조와 예배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요한계시록 14:7은 우리에게 만물의 창조주이신 주님을 경배하라고 부른다. 진화론이 지난 2세기 동안 전 세계에 휘몰아치는 중에도 안식일은 우리의 정체성을 변함없이 상기시켜 준다. 안식일은 우리가 창조된 존재이며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충성과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이것이 마귀가 안식일을 그토록 싫어하는 이유이다.

요한계시록 12:17과 요한계시록 14:12을 읽어 보라. 창조주를 경배한다는 것은 결국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은 짐승을 숭배하는 것과 정반대이다. 역사상 가장 큰 반대와 극심한 박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충성하는 마지막 때의 백성이 있을 것이다.
“넷째 계명을 지키는 대신에 국가의 법률과 일치되도록 거짓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세력에 충성하는 표가 되는 한편,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창조주께 충성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05).

(이어서) 요한계시록 14:12은 이렇게 헌신하여 구주를 따르는 사람을 “예수의 믿음”을 가진 자라고 말한다. 예수의 믿음은 앞이 보이지 않는 때에도 여전히 신뢰하는 깊은 믿음이다. 이는 이해할 수 없을 때 인내하는 믿음이다. 그것은 믿음으로 받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임박한 쟁투를 헤쳐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알려주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근본적인 상징이다. 따라서 로마가 그랬던 것처럼(단 7:25 참조) 안식일을 무너뜨리려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을 찬탈하려는 것이다.

<교훈> 계명 대신 거짓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짐승을 따르는 표가 되지만 하나님을 경배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을 가진 증거가 된다.

<묵상> 마지막 때에 왜 안식일이 그렇게 논쟁의 대상이 되는지 어떤 사실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까?

<적용> 그대는 안식일에 대한 어떤 논쟁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 – “안식일은 창조를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살아 계신 참 하나님께로 향하게 한다. 하나님의 창조력에 대한 사실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방의 신들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로 성경 전체에 걸쳐 언급되고 있다. 안식일을 계속 준수해 왔다면 사람들은 창조주를 기억하고 사랑하며 존경과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며 따라서 우상숭배자나 무신론자 그리고 이교도는 하나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살아남는 이들, 382~383).

<기도> 분주한 일상 속에서 내리는 결정 가운데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뜻과 다른 결정을 내릴 때가 있음을 봅니다.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부터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뜻을 따를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