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화요일 장년 교과] 신약이 말하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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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도 구약과 동일하게 죽음을 잠으로 나타내며 거기에 더해 예수의 재림 때 있을 영광스러운 부활의 때에 받을 하늘에 간직한 소망을 기다리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11:11~14, 21~25, 디모데후서 1:10, 고린도전서 15:51~54, 데살로니가전서 4:15~17을 읽어 보라. 구약의 묘사와 비교하면 신약 기자들의 죽음에 대한 묘사는 어떠한가?

구약과 신약 모두 죽음을 잠이라는 상징으로 표현한다. 성경에서 “잠”이라는 단어는 적어도 53번 이상 죽음과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성경 기자들은 죽음 직후 의식을 가지고 육체를 떠나는 불멸의 영혼이란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여기에 신약은 구약에서 이미 암시했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영광스러운 부활의 측면을 더한다.
복음서는 영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있음을 강조한다. 마귀나 어떤 음부의 권세도 믿는 자 안에 있는 영생의 확신을 빼앗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정복하셨다. 굳게 닫힌 것 같았던 무덤 문이 열렸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믿는 자가 그분이 다시 오시는 그날에 무덤에서 부활할 것을 확증한다.
바울이 한 말을 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 15:16~18). 죽은 사람이 사후에 이미 천국의 복락에 들어갔다면 이 구절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미 천국에 있다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바울의 요점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기초이며, 부활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으며 죽은 자들은 여전히 땅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벧전 1:4)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주신다는 부활의 소망에 관한 다른 성경 구절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어서) 그러나 죽은 자들이 이미 하늘에 있다면, 왜 베드로는 우리를 위해 “하늘에 간직한” 기업에 대해 이야기 하는가? 신약의 신자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자의 부활을 간절히 고대했다. 하늘에 간직한 소망은 신자들에게 이 땅의 삶의 시련 속에서도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다.

<교훈> 신약도 구약과 동일하게 죽음을 잠으로 나타내며 거기에 더해 예수의 재림 때 있을 영광스러운 부활의 때에 받을 하늘에 간직한 소망을 기다리라고 말한다.

<묵상> 부활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그토록 강력한 소망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은 왜 중요합니까?

<적용>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새롭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부활의 믿음을 간직하기로 선택하십시오.

<영감의 교훈>
죽음으로 헤어진 자를 부활 때 만나게 됨 – “우리가 사랑하는 식구들이 죽음으로 헤어지게 된다. 우리는 영원히 잠든 저들의 눈을 감겨주며 무덤에서 장사하고 다시는 저들을 못보게 된다. 그러나 소망은 우리의 정신을 버티게 한다.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며 예수님 안에서 잠든 사랑하는 식구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저들은 죽었던 땅에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2권, 259~260).

<기도> 하늘의 소망마저 왜곡하는 교묘한 사탄의 속임수가 가득하니 우리에게 깨어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주신 자유를 누리게 하시되 우리를 혼란하게 하는 문제들에서 지켜 주시고 말씀을 항상 연구함으로 진리를 나타내는 저희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