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물렁한 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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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신 18:9)

내리막은 오르막보다 쉽다. 이 세상에서는 신앙의 가치를 지켜 내기보다 타협하기가 쉽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신 18:9)라고 경고했다. 타협이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1881년 6월 2일 자 『사인스 오브 더 타임스』에서 엘렌 화잇은 이렇게 진술했다. “믿지 않는 친척과 친구를 구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분명한 선을 긋기가 늘 쉽지는 않지만 한 번의 양보는 또 다른 양보의 길을 터 주어 한때 진실하게 그리스도를 따랐던 사람의 품성과 삶이 세상의 관습을 따르게 만듭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는 깨어지고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시험의 때가 이르면 그들의 소망은 뜬구름이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들은 자신과 자녀들을 원수에게 팔아넘겼고 하나님께 욕을 끼쳤습니다. 그분의 의로운 판결이 공개될 때 그들은 뿌린 대로 거둘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을 향해 이르셨듯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믿지 않는 친척과 친구를 구슬리기 위해서”라는 의도 자체는 순수하고 선교적인 뜻이 담겨 있을 수 있다. 친척과 친구들의 생활 방식에 맞추어 접근성을 높이면 재림 기별을 쉽게 전할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 풍습을 따르면 교회가 세상처럼 바뀌지 절대로 교회가 세상을 그리스도께로 이끌 수 없다.”(쟁투, 509)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결과는 뻔하다. “한 번의 양보는 또 다른 양보의 길을 터 주어” “세상의 관습”으로 내리닫게 한다.
기독교의 표준과 도덕적 가치가 위태로울 때 우리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굳건하고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단 1, 3장). 반드시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친지와 친구의 비위를 맞추려고 영혼을 팔아넘기지 말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태영/전주은 선교사 부부(서인도네시아)
1월에 태어난 셋째 아들을 포함한 세 아이가 선교지에서 건강하게 자라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