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금요일 장년교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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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로의 계단>, 105~113 ‘의혹을 어찌할까’를 읽어보라.
성경에는 유한한 인간이 이해하기 어렵고 우리가 온전하게 설명하기에는 너무 심오한 신비들이 많다. 이것이 우리에게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고 성경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자발성이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성경에 대하여 충실하면 그 의미가 때로 우리의 기질을 거스른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실로 의미하는 바를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성경에 대하여 충실하면 그 본문을 수정하거나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회피하기보다 그것을 존중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건한 마음과 기도하는 정신이 없이 펴거나 생각과 애정을 하나님께 두지 아니하며 그의 뜻에 융화시키지 아니하고 펼 때에 우리 마음은 의혹으로 흐려져서 성경을 연구하는 그것이 도리어 회의주의를 강화시킨다. 원수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여 옳지 않은 해석을 하게 한다. 항상 말과 행실에 있어서 하나님과 화합하기를 힘쓰지 아니하면 아무리 유식할지라도 성경을 그르게 해석하기 쉽기 때문에 그 성경 해석을 그대로 받기는 위험하다. 무슨 오류를 찾으려고 성경을 살피는 자들은 영적 통찰력을 가지지 못한다. 그들은 왜곡된 시선으로 단순하고 까다롭지 않은 것들 속에서도 의혹과 믿지 못할 만한 조건들을 보게 된다”(정로의 계단, 110~11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이번 주에 논의한 태도들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을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또 다른 중요한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➋ 성경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보고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천연계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만 보더라도 그것은 얼마나 많은 신비에 싸여 있습니까?
➌ 일례로 눅 23:43에서 예수님이 강도에게 하신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요 20:17, 전 9:5, 고전 15:16~20은 그 말씀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