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수요일 장년 교과] 점치는 잔

167

요셉은 베냐민의 자루에 넣어둔 점치는 잔을 통해 형제들의 마음을 시험했고, 형제들은 베냐민을 향한 연합된 마음을 통해 그들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증명했다.

창세기 44장을 읽어 보라. 요셉이 점치는 잔을 다른 형제들의 자루가 아니라 베냐민의 자루에 넣어 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이야기는 앞선 이야기와 평행을 이룬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요셉은 구체적인 지시를 통해 다시 한 번 형제들의 자루에 식량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의 귀한 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넣으라는 이상한 명령을 추가한다.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간다. 앞선 여정에서는 형제들이 베냐민을 데려오기 위해 가나안으로 돌아갔지만, 이번에는 요셉을 만나기 위해 애굽으로 돌아가야 한다. 앞선 상황에서는 형제들 모두가 그들의 자루에서 같은 것을 발견했지만, 이번에는 베냐민의 자루에서만 요셉의 잔이 발견된다. 귀빈으로서 요셉의 잔에 손을 댈 수 있었던 베냐민은 이제 귀한 물건을 훔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그는 감옥에 가야 했다.
점치는 잔을 이용했다고 해서 요셉이 그것의 능력을 믿었다는 뜻은 아니다. 요셉은 “점치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 일은 결코 없었으나 그들로 하여금 그가 저희 생활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을 믿게 하고자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229).
요셉에게 점치는 잔은 초자연적인 영역을 떠올리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형제들의 죄책감을 일깨우기 위한 도구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발견하신 죄악을 언급하는 것을 볼 때(창 44:16), 유다가 요셉의 의도를 제대로 깨달은 것 같다. 또한, 귀한 잔을 훔친 것은 가혹한 형벌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함으로 형제들의 생각을 시험하게 하였다.
형제들의 격렬한 감정과 행동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 모두가 베냐민이 요셉과 같이 잃은 바 되어, 아무 잘못 없이 애굽에서 노예가 될까 두려워하며 같은 아픔으로 연합되었다.

<묵상>
창세기 44:18~34을 읽어 보십시오. 유다의 대답에서 보는 것과 같이 대속의 과정 속에는 어떤 사랑의 원칙이 내재 되어 있습니까? 이와 같은 사랑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어떻게 설명해 줍니까? (참조, 롬 5:8)

(이어서) 이것이 바로 마치 숫양이 아무 잘못 없는 이삭을 “대신하여” 제물로 바쳐졌던 것처럼(비교, 창 22:13), 유다가 베냐민을 “대신하여”(창 44:33) 노예가 되기를 간청하는 이유이다. 유다는 아버지에게 미치게 될 “재해”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 곧 대속물로 바친다(창 44:34).

<교훈>
요셉은 베냐민의 자루에 넣어둔 점치는 잔을 통해 형제들의 마음을 시험했고, 형제들은 베냐민을 향한 연합된 마음을 통해 그들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증명했다.

<적용>
우리를 위한 대속 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영감의 교훈>
우리의 대속제물이신 예수님 –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대속제물이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대속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이미 이루어진 대속을 받아들일 수는 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3:18).…구원이 우리 모든 인간에게 이르게 된 것은 우리 구세주께서 무한하신 희생을 치르시고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신 때문이었다”(가려뽑은기별 1권, 321).

<기도>
우리를 향한 무한한 사랑 때문에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우리가 갚아야 할 죗값을 대신 해결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해 흘려진 그 피의 의미를 절대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