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월요일 예수바라기] 사자를 네 앞서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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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며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출 23:20, 21).

왜 안식일이 여기서 나오지?(출 23:10-13) 십계명에 이어 곳곳에 인간의 마음의 동기를 드러내게 하는 엄밀한 법조항들이 등장합니다. 마음의 동기가 드러날 때, 우리는 불편합니다. 나의 생존을 보장받고 이익을 얻을 길이 막히는 느낌입니다. 평안과 안식이 없습니다. 바로 이 순간, 안식년 제도가 등장합니다. “쉼과 숨”이 하나 되는 안식일이 나옵니다(12절). 쉬어야 숨을 쉴 수 있습니다.

마음의 동기가 드러날 때 우리가 어떻게 쉼을 누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생존-이익-탐욕은 한 묶음입니다. 내가 쉬기 위해서는 나 대신 누군가가 종이 되어서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본인뿐 아니라 소와 나귀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까지 쉬고 숨을 돌리게 하라고 합니다. 믿음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이 믿음의 답은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습니다. 안식일에서, 안식년에서 우리는 하루를 쉬어도 일 년을 쉬어도 우리를 살게 하시는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홍해를 가르는 구원의 경험을 안식일마다 안식년마다 그리고 모든 손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일 년에 세 차례 얼굴를 보이는 절기에서 반복해야 합니다(출 23:14-17).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며(출 23:20-28) 안식일의 하나님을 만나야 하나님의 사자이신 예수께서 우리 앞에서 가신다는 말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안식일의 은혜를 반복해서 누려야만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이 은혜의 연속임을 체득하게 됩니다.

본문은 여호와의 사자가 우리 앞에 간다는 것을 두 번 반복해서 강조합니다(20, 23절). 세번째는 여호와의 위엄을 앞서 보낸다고 하십니다. 그 영광 앞에 대적은 등을 보입니다. 은혜가 승리를 보장하고 승리는 믿음을 굳게 해줍니다. 네 번째는 왕벌을 앞서 보내십니다. 주님은 필요하다면 눈에 보이는 세상의 많은 도구들도 하나님의 사자처럼 사용하십니다.

실제로 가나안으로 갈 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법궤는 모든 군대의 맨 앞에서 진군하였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 앞에서 가십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주님을 화나게 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오늘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숨을 쉬어봅니다. 앞장서서 가시는 주님의 등을 보며 숨을 휴하고 쉬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