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기 1000명선교사와 보낸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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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기 1000명선교사들은 루손섬 남부 아떼모난 지역의 한 리조트에서 영어교육을 받고 있다.
수평선 끝자락엔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멀리 보이는 이름모를 섬에서는 만선의 희망을 품은 고깃배들이 어디론가 분주히 오간다. 이곳 사람들이 ‘달리사이’라고 부르는 나무는 짙푸른 녹음을 한껏 뽐내고, 야자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늘씬하게 뻗었다.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카티지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누군가는 멀찍이 홀로 떨어져 앉아 파도소리를 벗삼아 성경을 편다.

이국의 감성을 물씬 풍기는 파스텔톤 건물은 그림책에서나 본 것처럼 예쁘고, 3층 옥상은 요즘 유행하는 루프탑 스타일의 레스토랑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꽤 여유롭고 아름다운 어느 휴양지를 떠올릴 법하다.

하지만, 55기 1000명선교사들이 훈련받고 있는 루손섬 남부 아떼모난 지역의 리조트는 생각만큼 낭만적이지도, 그리 운치가 있는 곳도 아니다. 오히려 선교사훈련원 기숙사가 얼마나 좋았는지 절로 떠오를만큼 시설이 열악하고 불편하다.

야자잎이 썩어 구멍이 숭숭 뚫린 카티지는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자 서둘러 자리를 옮겨야 할만큼 낡았고, 바다는 에메랄드빛이 아닌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잿빛이다. 마당은 밤새 내린 비 때문에 어디부터 밟아야할지 모를만큼 질퍽하다.

리조트의 방에서는 밤마다 모기와의 전쟁이 벌어진다. 기자가 하룻밤사이 7방이나 물렸다고 투덜거리자 임선화 선교사는 피식 웃으며 “저는 첫날 20방 물렸어요. 심지어 손가락 사이까지. 필리핀 모기에겐 한국사람 피가 맛있나봐요”라고 눙을 치며 까르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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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힘들게 하는 건 음식과 화장실. 소식을 듣고 인근 지역교회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온 성도들이 정성껏 차려내지만, 대부분 현지식이어서 입맛에 맞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김원걸 선교사는 “그래도 음식 가짓수가 많아서 괜찮아요. 화장실도 견딜만해요”라며 씽긋 웃는다.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리조트라고 해서, 그래도 시설이 어느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불편해서 어떻게 지내요?”

“설마 한국의 리조트를 생각하고 오신 건 아니죠? 저희가 지금 놀러온 게 아니잖아요. 그래도 동료들과 같이 있으니 재밌어요.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선교사이기에 버틸수 있고, 즐길 수 있다는 말에 믿음이 간다. 그래도 화산재가 날리는 실랑보다는 낫다며, 이마저도 감사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일까. 환경은 녹록치 않지만, 분위기나 팀워크는 최상이다.

현재 이곳에는 몽골, 필리핀, 스리랑카 등 지구촌 이웃 나라에서 온 35명의 선교사가 영어교육을 받고 있다. 그중 한국인 선교사가 18명이다.

하루 일과는 새벽 4시30분부터 시작한다. 세면과 간단한 체조를 한 후 5시부터 QT 시간으로 말씀을 묵상한다. 아침식사 후 본격적인 수업을 한다. 전용 교재 외에도 영어 성경이야기를 중심으로 문법에 맞춰 읽고 쓰고 말하는 법을 하루 종일 배운다. 수준별 5개 조로 나뉘어 진행하는데, 마침 재미교포나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온 선교사가 있어 자발적 교사로 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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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선교사훈련원 캠퍼스가 있는 실랑에서 자동차로 5시간이나 떨어진 이곳으로 온 건 지난 16일. 본부가 온통 화산재로 뒤덮이자 다음날 곧바로 SCLC(South Central Luzon Cenference) 게스트하우스로 대피했다. 하지만, 일부 대원이 천식증상을 보이는 등 그마저도 계속 머물 수가 없어 이곳으로 다시 이동했다.

다행히 재림교인이 운영하는 업체였고, 가격도 파격적으로 할인해줬다. 고맙게도 훈련기간 동안 다른 손님을 일절 받지 않기로 약속했다. 물론,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하기엔 여러가지 제약이 따르는 환경이지만, 이마저도 감사하며 당분간은 이곳에서 일정을 진행할 예정이다.

설날이었던 지난 25일은 이 리조트에서 맞는 두번째 안식일이었다. 앞서 18일에는 인근 지역교회를 방문해 현지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이날은 온전히 선교사들끼리 드리는 첫 안식일 예배였다.

누군가 아침식사로 떡국을 준비했다. 김가루를 고명으로 얹고 적당히 익은 김치를 곁들이니 집에서 먹던 맛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더욱 특별하고 그 정성에 고맙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한국의 전통음식에 몽골에서 온 선교사들도 ‘딜리셔스’를 연발한다.

오전 8시50분. 모두 ‘루프탑’ 식당에 모였다. 식당은 곧 예배당이 됐다. 모두 흰색 상의와 검정색 하의를 정갈하게 맞춰 입었다.

안식일학교는 두리안 클래스와 스트로베리 클래스가 준비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회심한 사건을 그린 성극이었다.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다채로운 순서가 이젠 선교사들의 세대도 바뀌었음을 체감시킨다. 몸을 던진 열연과 적절한 효과음도 재밌지만, 즐거움과 의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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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15분부터는 교과공부가 이어졌다. 언어와 국가별로 모였다. 한국인 선교사들은 두 개의 조별로 나뉘었다. 이날의 인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였다.

“이번 주 교과의 핵심은 경배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과연 누구를 경배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온갖 핍박과 외압에도 다니엘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선교사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한다. 자신도 선교사로서 앞으로 어떤 믿음과 신앙을 지녀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부원장 전석진 목사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인용한 설교에서 1000명선교사의 사명을 조명했다. 그는 원장 전재송 목사가 캠퍼스에 남아 화산 폭발 이후의 상황을 정리하고, 직원들과 함께 수습하는 사이, 선교사 교육을 총괄하고 있다.

전 목사는 “우리는 매일 매순간 하나님을 주목해야 한다.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때까지 항상 눈을 들어 그분을 바라봐야 한다. 어떤 순간에도 말씀에 집중하고 순종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라. 그것이 우리가 굳건한 믿음을 지니고, 성공적인 선교사로 살 수 있는 길”이라고 권면했다.


55기 1000명선교사와 보낸 안식일
이날 아떼모난 지역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차라리 실랑에 한껏 퍼부었으면 좋으련만, 야속한 날씨는 오락가락 심술을 부렸다. 그럼에도 이들은 개의치 않으며 “아름다운 안식일”이라고 긍정했다.

천정에 구멍이 숭숭 뚫린 창문도 없는 ‘예배당’엔 비가 들이쳤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직 서툰 영어로 더듬거리며 하는 기도지만, 누구보다 간절했다. 헌금바구니는 비닐봉투로 대신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 경건했다.

박가영 선교사와 서혜린 선교사의 플루트 연주를 곁들이니 찬양은 은혜를 더했다. 남자대원들의 아름다운 노래가 울려퍼지자 주방에서 식사준비에 한창이던 ‘아떼’도 어깨를 덩실거렸다.

자신들조차 “특별한 기수”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우여곡절을 겪은 이들은 오는 30일(목) 5주간의 영어교육을 마친다. 현재 도시선교 활동 중인 필리핀인 지원자들이 합류하면, 7주간의 정식 선교사 교육에 돌입한다. 그리고 3월 21일 파송의 대장정에 오를 예정이다.

이들은 그렇게 필리핀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선교사로 거듭나고, 완성되어 가고 있다. 우리가 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화산 기수’의 이야기들은 머잖아 한편의 산 간증이 되어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아니, 이제 곧 맞닥드리게 될 선교지에서는 어쩌면 이보다 더 크고 엄청난 극복의 경험을 써내려갈 것이다.

기자가 이들과 헤어져 리조트를 나서는 날, 필리핀지진연구소는 따알 화산의 경계경보를 3단계(비교적 적은 폭발 가능성)로 하향조정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들이 캠퍼스로 복귀할 수 있는 날이 그만큼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