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출 30:12).
왜 속전이 갑자기 나올까? 속전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사망에서 구원하셨기에 드리는 목숨값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성소 제도를 이야기하다가 속전이 등장할까요?
성소 기구에 대한 설명은 제사장과 연관성이 깊은 분향단으로 마쳐집니다(30장 초반). 번제단에서 번제를 드리고(29장 후반) 분향단에서 향을 피우는 일(30장의 후반)이 제사장 사역의 가장 큰 핵심입니다. 그 사이에 속전이 등장합니다(30장 중반). 즉 제사장이 번제를 드리고 향을 사르는 자신의 사역을 시작할 때 속전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세는 것은 전쟁에 나가는 일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들은 선악의 대쟁투에서 죄와 싸울 때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전만이 생명의 속전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십자가로 속전을 드림으로 자기 목숨을 맡긴 자들을 데리고 성소에 들어가실 계획이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께 속전을 드리는 일은, 우리가 우리의 속전이신 예수님에게 우리의 생명을 맡긴다는 표현입니다. 바로 그 일이 우리에게는 성소 사역의 시작입니다.
부족하지만 완전한? 속전은 반세겔이기에 부족함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반세겔은 십게라(10은 인간과 관련된 완전수)이기에 온전합니다. 우리의 속전은 언제나 부족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온전하게 받으십니다. 이 속전은 누구에게나 반세겔입니다. 누구에게나 주님의 속량하시는 은혜는 공평하게 동일합니다. 이 속전은 거룩하기에 성소봉사에서만 사용됩니다(출 30:16).
후일에 베드로가 성전세 즉 속전을 내라는 요구에 어설프게 응답했을 때, 주님은 물고기 배에서 나온 돈으로 속전을 지불하심으로 속전의 신적 근원을 확인하셨습니다. 이 속전은 우리가 부족한 가운데 주님께 바치는 것이기에 주님이 아니면 그 속전은 그냥 동전일 뿐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속전을 받아들일 때, 주님의 희생으로 인해서 우리가 드리는 모든 헌물은 속전이 되고 우리의 섬김이 다 속전이 됩니다. 그리고 속전이 된 우리의 모든 수입과 섬김은 성소봉사에 모두 사용됩니다. 그것이 바로 성소로 들어가는 우리의 거룩한 생애의 출발입니다.
저희의 모든 재물이 속전이 되게 하시고 오늘 일상의 모든 섬김이 성소 봉사가 되게 하소서. 반세겔의 제 인생을 온전하고 거룩한 십게라로 받아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