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화요일 예수바라기]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86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 39:2, 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은 상인들에게 팔리고 다시 보디발에게 팔리는 그 사이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그때 그는 진정 메시아를 만납니다. 그는 충분히 원망할 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고 아버지 야곱의 하나님이 자신 요셉의 하나님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요셉의 생애에 마음 놓고 전면에 등장하십니다.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임재와 현현은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통해 하나님이 존재하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범사에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창 39: 2, 3). 그런데 정말 범사입니까? 그는 여전히 노예였습니다. 요셉의 수고로 집에 복이 소유에 넘쳐났지만 요셉의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4, 5절).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부할 수는 있지만 피할 수는 없습니다. 여주인이 있는 방에서 도망칠 수는 있었지만 여주인의 모함과 누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감옥행을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7-20절). 그런데 하나님은 감옥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인자도 더해주시고 간수장의 은혜도 받게 해주십니다. 간수장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요셉을 또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21-23절). 그런데 요셉은 여전히 감옥에 있습니다. 그는 정말 형통했나요?

임재와 형통 사이 요셉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문장이 진술됩니다. 그러나 강조점을 형통에 둔다면, 여전히 노예이고 여전히 죄수일 때 특히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의심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애는 요동합니다. 그러나 강조점을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둔다면 상황이 자기가 원하는 모습인지 아닌지에 상관이 없어 처한 곳에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상황에 그리 영향을 받지 않음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통해서 감옥에서도 당신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저희의 삶에 예수께서 함께 하시옵소서. 저희가 모든 일에 진정한 형통을 경험하게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