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 화요일 예수바라기] 일상 속의 신비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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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일상에서 만난 신비 애굽의 공주는 일상적으로 하는 목욕을 하러 나갔다가 아기를 만나 물에서 건져내고 모세라고 부릅니다. 일상과 위기가 만나 이스라엘의 구원의 신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드로의 딸들은 일상하는 일인 양떼에게 물을 주려 하다가 도망친 모세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미디안 족속의 제사장 가족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켜온 자들이었습니다. 일상과 위기가 만나 이스라엘의 구원의 신비가 명맥을 이어갑니다.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한 모세는 이드로의 양을 치다가 서쪽으로 양떼를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릅니다. 자기의 일상인 양떼를 돌보다가 떨기나무가 불타는데 사라지지 않는 신비한 현상을 만납니다. 거기서 그는 거룩한 분이 있는 거룩한 공간에 들어갑니다.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하나님은 이름을 물어보는 모세에게 자기의 이름을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라고 대답합니다. 가장 잘된 번역 중 하나가 “나는 스스로 있는 자” 혹은 “나는 스스로 언제나 존재한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지금 의존자가 자존자를 만났습니다.

모세의 일생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살 수 없는 시간들의 합이었습니다. 애굽의 왕자라고 뽐내며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가 자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겠지만 요게벳과 미리암과 바로의 공주가 없었다면 그런 자신도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지금 양을 치며 살아가는 것도 이드로와 십보라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간은 서로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겸손해집니다.

그런데 서로 의존하다가 그것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합니다. 자기를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도 자신을 책임지지 못하고 나일강에 아들을 버려야 했습니다. 자신이 도우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배반합니다. 애굽의 공주도 영원히 계속해서 그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자신도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고 도망쳐야 했습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갈증과 간절함을 느낍니다. 어떤 절대적인 선과 능력을 가진 존재가 있어야만 우주와 내 존재가 온전해질 수 있다는 간절한 소망을 인지합니다. 그렇게 우리 인간은 어느 일상의 순간에 자존자가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오늘의 말씀에서 절대적인 자존자를 잠시간이라도, 살짝이라도 뵙게 하소서. 오늘의 일상이 영원으로 나가는 한 순간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