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죽음, 울음, 그리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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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창 50:26)

창세기의 주인공인 야곱이 축복의 유언을 마치고 침상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는 야곱에 와서 공동체의 이야기가 됩니다. 열두 아들이 수많은 이야기를 양산하였지만 그들은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성경은 창세기의 주인공이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창 49:33)라고 말함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함께 같은 공동체의 소망 속에 잠들었음을 에둘러 표현합니다.

울보 요셉 요셉은 숨을 거둔 야곱의 얼굴에 울며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칠 일 동안 애곡합니다. 성경은 요셉이 형제들로 말미암아 팔려갈 때 그가 어떤 감정을 보였는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울었습니다(창 42:24). 베냐민을 보았을 때 울고(창 43:30), 자신의 정체를 형제들에게 말했을 때 큰 소리로 웁니다(창 45:2).

이제 창세기를 마무리하며 그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 울고 있습니다. 또 형제들은 아버지가 죽자 이제 요셉이 그들에게 보복을 할까 두려워하며 용서를 청합니다. 그러자 요셉은 그들의 말을 들으며 웁니다. 무언가 온전한 해결이 필요합니다.

그는 백십 세를 살다가 자신이 죽으면 애굽을 떠날 때 유골을 메고 올라가라고 명합니다. 이렇게 창세기의 마지막 장은 울음과 죽음으로 마무리됩니다. 형제간의 용서와 화해도 조금은 미진하게 마무리됩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장은 마지막(?) 창세기는 보시기에 좋았다는 창조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은 보기에 안타까운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렇게 마무리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소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을 해결할 구원의 이야기가 펼쳐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숨을 거두는 것으로 마치면 안 됩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 가야합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출애굽기의 서론입니다. 창세기는 창조에 버금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하심이 나타나야 하는 일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서론입니다.

저희는 죽음과 울음으로 인생을 마치면 안됩니다. 지금의 삶은 앞으로 펼쳐질 주님의 역사하심을 준비하는 서론입니다. 저희는 약속의 하늘로 가야합니다. 주여, 약속하심을 오늘 이루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