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월요일 예수바라기] 끼어들고 지저분하고?

86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창 38:29)

끼어든 이야기 창세기 38장은 끼어든 이야기입니다. 형들에게서 요셉을 산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보디발에게 팝니다(창 37:36). 여기서 요셉은 그저 팔리고 넘겨집니다. 그때 유다 이야기가 끼어듭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세상에서 이리저리 팔립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내 삶의 변화를 위해서는 끼어든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지저분한 이야기 요셉을 판 유다는 죄책감에 젖어 삽니다. 그리고 악취가 나는 형제들을 떠납니다(창 38:1). 아예 이방 가나안 사람들하고 친구를 합니다. 가나안 사람의 딸과 결혼을 합니다(창 38:2, 12). 유다는 아들들을 낳았지만 별로 가정을 돌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내가 셋째 아들 셀라를 낳을 때 그는 옆에 있지도 않았습니다(창 38:5).

그의 자녀들도 자기 이익을 위해 형사취수의 예를 따르지 않고 벌을 받아 죽게 됩니다. 인생이 망가지고 가정이 무너집니다. 아내가 죽자 이방인처럼 창녀를 구해 회포를 풀려고 합니다. 다말은 이런 사실을 이용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인생도 한 번 무너지고 죄책감에 젖으면 점점 더 심한 곳으로 향합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리를 듣자 그녀를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말하며 공의를 집행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도 제대로 못 살면서 이렇게 남에게는 정의의 잣대를 들이대며 심판하려고 합니다(창 38:24).

터뜨리고 나온 이야기 유다는 다말이 내놓은 담보물을 본 다음에 “그는 나보다 옳도다”(창 38:26)라고 말합니다. 솔직히 다말도 옳은 행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유다보다 옳았을 뿐입니다. 우리도 인간끼리 좀 더 나을 뿐이지 온전히 옳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산모의 난산 중에 아기가 배를 터뜨리고 나옵니다(29절).

그가 다윗의 조상이 되고 예수의 조상의 되는 베레스(터뜨림)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사에 끼어든 다음, 점철되는 죄와 어긋나는 막장 불륜 사이를 터뜨리고 나온 존재입니다. 그렇게 정결함이 부정함 속에서 터뜨리며 등장하였습니다. 구원은 부정함 속에서 등장하는 예수님의 끼어듦과 터뜨림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우리의 공로가 아닙니다.

오늘 사고 팔리는 저의 삶에 끼어 들어온 주님, 오늘 저의 더러움을 터뜨리고 구원을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