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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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성령의 침례를 받은 사람은 방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이 많다(행 2:1~13; 10:44~48; 19:1~7). 그렇다면 초기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언어를 사용했을까? 황홀경에 젖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을까? 아니면 사람의 말을 했을까?
고대 이단 종교와 나중에 몇몇 기독교 분파에서도 황홀경 방언을 사용했지만 이런 방언이 새롭게 부각된 것은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의 아주사 스트리트 부흥 운동에서였다. 1906년 4월 9일, 윌리엄 J. 시모어가 두어 가정에서 ‘은사주의’ 기도회를 개최할 때 에드워드 리와 흑인 여러 명이 이 현상을 체험했다. 여기서 오늘날의 방언 운동이 세계로 퍼졌다. 그런데 이 방언들이 초기 기독교의 방언과 같은 것일까?
진정한 방언의 은사는 복음 전도를 위해 성령에 의해 신자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단일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 내에서 특별한 지위를 얻도록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고전 14:9, 18~19, 22, 27~28). 오순절에 제자들은 외국인들이 각자의 언어로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그들의 언어로 말했다(행 2:4~13). 고넬료에게 임한 방언의 은사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확인해 주시는 증표였다(행 10:44~48). 고린도의 방언은 무역의 중심지에서 거류민과 외국인 여행객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행 19:1~7).
참다운 방언의 은사는 오늘날에도 물론 볼 수 있다. 통역자가 없는 선교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런데 성령의 임재는 사탄도 흉내 낼 수 있는 영적 은사들(출 7:8~13; 20~22; 8:6~7)보다는 성령의 열매를 통해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갈 5:22~23). 엘렌 화잇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모든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상담자, 거룩하게 하는 분, 인도자, 증인으로 오신다”(행적, 49). 자신의 실력과 은사에 관계없이 우리는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정태/김성진 선교사 부부(베트남)
베트남 삼육 신학교의 이전 및 건축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