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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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이사야 1:5-6).

예루살렘 백성의 영적 상태로부터 인간의 보편적인 죄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율법과 성전을 갖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선물이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말씀으로 심성을 갈고 닦지 못했고, 성전에서 모든 불의에서 정결케 되는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병적 상태에 있으면서도 종교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끔찍합니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자기를 지배할까봐, 그래서 지나치게 많이 변할까봐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러나 절반쯤 회심한 것은 전혀 회심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상하고, 터지고, 맞았다는 말 속에 함축된 의미는 외부의 폭력자에게서 얻어 맞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정치적 폭력을 행사한 외부 세력은 아시리아입니다. 그들은 무자비한 정복정책을 펼쳤고, 그들에게 반항하면 큰 희생을 치뤄야 했습니다. 코가 베이고, 눈이 뽑혔습니다. 그 위협 앞에 많은 나라들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했습니다.
아시리아의 뒤에는 하나님에게 반역한 영적 세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맘 속에서 추방해 버릴 때, 그 자리에 사탄이 자리를 잡습니다. 유혹은 맨 처음에 사소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일단 수락하면, 사탄은 자기의 희생물로 그 손 아귀에 떨어진 영혼을 비참한 존재로 만듭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한결같이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 데가 없는 존재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내면 세계를 살펴본 후 선을 원하긴 하나 악을 행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탄식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이러한 탄식은 생명에 이르는 탄식입니다.
절망적인 죄가 있는 곳마다 우리 때문에 발끝부터 머리까지 상처투성이로 우리 죄를 질머지신 십자가의 예수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살아계신 그분이 오늘 우리에게 새롭게 됨을 허락하십니다. 그분의 성령을 통해 매일마다 거듭날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