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수요일 장년 교과] 승자의 면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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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승리자의 면류관을 쓰시고 곡식을 거두러, 즉 은혜로 변화되고 성화의 열매를 맺은 성도들을 데리러 이 땅에 다시 오신다.

요한은 예수님을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진 인자(계 14:14)로 묘사한다. “면류관”이라는 단어는 스테파노스(stephanos)이다. 그것은 승리자의 왕관이다. 운동선수가 중요한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그는 영예와 영광과 승리의 면류관인 스테파노스를 받았다.
예수께서는 한때 수치와 조롱을 상징하는 가시 면류관을 쓰셨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와 버림을 받으셨고 욕설과 조롱과 침 뱉음과 매질과 채찍질을 당하셨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다시 오신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오시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4:15과 마가복음 4:26~29을 읽어 보라. 두 구절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이 있는가? 이 구절들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천사가 성전의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앞에서부터 나와 말한다. “때가 되었나이다. 곡식이 다 익었습니다.” 가서 당신의 자녀들을 집으로 데려오십시오.
신약에서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농사에서 나온 예를 들어 말씀하셨다. 그분은 그의 백성의 삶에서 복음의 씨가 자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무르익은 추수의 상징을 한 번 이상 사용하셨다. “씨가 발아하는 것은 영적 생활의 시작을 나타내고 곡식이 자라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성장에 대한 아름다운 표상이다. 천연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적 세계에 있어서도 자라남이 없이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식물은 자라나지 않으면 죽는다. 식물이 자라는 소리도 없고 눈에 띄지도 않으나 끊임없이 계속하여 자라는 것처럼 그리스도인 생애의 발전도 그와 같다. 발전의 단계마다 우리의 생애가 완전하게 될 수 있다. 또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면 계속적인 발전이 있을 것이다. 성화는 일생을 통해 이루어야 할 사업이다. 우리에게 기회가 많을수록 우리의 경험은 넓어지고 우리의 지식도 증가한다.” (실물교훈, 65, 66)

(이어서) 금빛으로 익은 곡식은 은혜로 변화되고 사랑으로 촉발되며 그리스도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순종하는 삶을 사는 모든 사람을 나타낸다.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이며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그분이 원하시는 것과 일치한다.

<교훈> 예수께서는 승리자의 면류관을 쓰시고 곡식을 거두러, 즉 은혜로 변화되고 성화의 열매를 맺은 성도들을 데리러 이 땅에 다시 오신다.

<묵상> 우리는 결함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럼에도 “발전의 단계마다 우리의 생애가 완전하게 될 수 있다”는 엘렌 화잇의 말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적용> 예수님의 마음과 일치하는 무르익은 품성의 열매를 맺기 위해 그대가 오늘 변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영광의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 –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아버지의 영광과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오실 것이다. 천천 만만의 천사들과 놀랍도록 아름다움과 영광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들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그분을 호위할 것이다. 그때 그분은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이며 천하만국이 그분 앞에 모이게 될 것이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이며 그분을 찌른 자도 역시 볼 것이다. 가시관 대신에 그분은 면류관 속에 면류관이 든 영광의 면류관을 쓰실 것이다.”(시대의 소망, 741)

<기도> 승리자이신 주님께서 지셔야만 했던 십자가를 기억하게 하소서. 주님이 이루신 값진 승리를 기억하며 나의 십자가를 지고 하늘의 면류관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세상 어떤 왕관보다 더 주님의 면류관을 바라도록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