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자들은 화 있을진저”(이사야 5:8)
극상품 열매 대신 들포도를 맺은 유다 백성들에게 이사야는 매우 격한 어조로 ‘화있을진저’라고 여섯 번이나 말했습니다. ‘화 있을진저(호이)’는 애곡하는 소리입니다. 그 식으로 살면 너 죽는다는 하나님의 눈물 섞인 경고입니다.
이 세상 집과 전토를 늘리며 이 땅 위에서 혼자 살려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아침부터 밤까지 독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거짓으로 인생 수레를 끌고 가는 자는 화 있을진저! 선과 악, 흑암과 광명을 바꿔 말하는 기만자(欺瞞者)들은 화 있을진저! 겁 없이 술접대 받고 뇌물로 뒷주머니 채우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저 잘나서 잘 나가는 줄 아나 멸망 길에 서 있는 헛똑똑이들은 화있을진저!
예루살렘의 잘 나가는 이들은 세상 사는 법에 통달한 듯 보였습니다. 재테크를 잘했습니다. 세상을 즐길 여유도 있었습니다. 출세하기 위한 줄서기의 달인들이었습니다. 적당히 대접 받는데 익숙했습니다. 거짓을 정당화할 명분도 만들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영리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을 헛똑똑이라고 하십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화 있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율법대로 안식일을 지키고 제사도 지냈기 때문에 종교에 대해서 통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탄식했습니다. ‘내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사 5:12, 24). 그들은 종교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했지만 신앙의 중심이신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참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식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예배의 정신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삶의 열매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웃에게 하나님처럼 정의와 공의를 베푸는 백성이 되었을 것입니다(사 5:7, 16). 그들에게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산 믿음이 없었습니다. 참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 닮은 사람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합니다. 지극히 종교적인 이 백성에게 제물과 절기와 집회는 넘쳤지만,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 없는 종교인이 되었습니다.
주님께 일곱 번의 ‘화 있을진저’라는 꾸지람을 받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죄는 외식이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렸지만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습니다(마 23:23).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입니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