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출 6:3)
이것은 정말 몰랐다는 것보다는 강조의 차이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여호와 이 구절의 배경은 창세기 17장 1절입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여기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여호와는 같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강조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있습니다.
본문에 따르면 당시에 약속이 있었고 약속의 증거로 할례를 받았지만 성취는 먼 미래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는 가장 가시적 성취는 일 년 내에 있을 이삭의 탄생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아기의 탄생을 보며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바다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날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일을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실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출애굽의 때에, 당시에 경수가 끊긴 사라의 몸에서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낳게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여호와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한 언약을 기억하고 그 약속을 성취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약을 기억함을 강조하면서 출애굽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소원을 들으셨던 여호와께서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소리를 듣고(출 6:5) 언약을 기억해서 성취하실 것이라며 “나는 여호와로다”라는 말씀을 네 번이나 하시며 확인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그 일을 강한 손으로 이루셨습니다(출 6:1).
믿을 것인가?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더 심해진 학대로 마음이 상하고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말을 듣지 않자 모세도 자신은 입이 둔해서 전할 수 없다고 하나님께 말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출애굽의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주님은 인간 아기로 태어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아브라함의 언약을 더 크게 성취하셨습니다. 앞으로 재림도 하시고 심판도 하심으로 온 우주에서 죄와 사망을 소멸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이 살기 힘들어서 혹은 복음을 전해도 듣는 자가 없다고 해서, 믿지 않고 불평하고 그렇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주신 약속과 그 성취를 오늘 믿습니다. 현실의 마음 상함과 가혹한 노역은 믿지 않음의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아픔의 신음 소리는 주님이 역사하실 구원의 시작임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