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화요일 예수바라기] 들포도를 맺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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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이사야 5:4).

잃어버린 낙원 회복의 사명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이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은 얇은 껍질에 단 맛을 내는 포도를 기대했지만 두껍고 신 맛에 악취까지 나는 포도가 열렸습니다. 이사야는 비슷하게 발음되는 반대말들을 사용하는 언어유희를 통해 이사실을 강조합니다. 정의(미쉬파트: 정의, 판결) 대신 포학(미쓰파흐: 출혈, 도살)이 판을 쳤고 공의(츠다카: 칭의, 구원)가 사라진 곳에서는 부르짖음(츠아카: 외침, 절규)만이 가득했습니다(7절). 악인들의 폭력으로 의인들의 피가 땅을 적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맺은 나쁜 열매의 극치는 십자가입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그들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마 27:25). 그러나 그 십자가는 정의와 평화의 나라의 대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들포도(베우쉼)는 5장에만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칠십인역은 이것을 ‘가시덤불’(아칸다스)로 번역했습니다. 농부가 포기한 포도원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났습니다(6절, 표준새번역). 아담이 타락했을 때 땅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났습니다(창 3:18). 이스라엘과 유다는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났고 예루살렘을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덮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들은 약속된 메시아에게 ‘가시 면류관’을 씌웠습니다(마 27:29). 배도의 역사는 가시덤불로 시작해서 가시 면류관으로 최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가시 면류관은 구원의 역사의 최고봉입니다. 십자가에서 가시관 쓰신 주님이 회개한 강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낙원이 회복된 것입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 15:1).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하늘로부터 이 땅으로 옮겨 심으신 참포도나무, 생명나무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요 15:5).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참 포도나무의 가지가 된 우리는 열매를 맺습니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