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화요일 장년 교과] 금식 친구들 (사 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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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이 속죄일에 금식함으로 스스로를 괴롭게 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그분께 대한 감사와 충절의 표현이어야 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3, 5~6).

사 58:3에서 말하는 ‘금식’은 어떤 금식을 가리키는가?
이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유일한 금식인 속죄일의 금식이 분명하다(레 16:29, 31, 23:27~32). 이것은 사 58:3에 나오는 ‘마음을 괴롭게 하되’라는 유사한 표현에 의해 확인되는데, 이는 레위기의 용어를 따른 것이다.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은 금식을 포함하여 자아를 부정하는 다양한 형태를 가리킨다(시 35:13, 단 10:2~3, 12 참고).
“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높”(사 58:1)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속죄일의 맥락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속죄일 열흘 전에는 ‘쇼파르’라고 하는 양각(羊角)나팔을 불어서 그날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음을 상기시켜야 했다(레 23:24). 더구나 매 50년째 속죄일의 나팔 소리는 희년의 해방이 시작됨을 알리는 것이었다(레 25:9~10; 사 27:13과 비교).
사 58:3~7을 읽어보라.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그들에 대하여 탄식하셨는가? 그들의 ‘금식’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경건’으로 인해 그들을 기뻐하실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것을 거꾸로 하고 있었다. 자아를 부정하는 속죄일의 관습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충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날에 대제사장은 성소를 정결하게 하고 이로써 이미 용서받은 죄로부터 그들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레 16장; 레 4장 비교).

교훈 : 이스라엘 백성이 속죄일에 금식함으로 스스로를 괴롭게 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그분께 대한 감사와 충절의 표현이어야 했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 사 58:6~7을 읽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금식이 무엇인지 묵상해 보십시오.

(이어서)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께 그들의 ‘경건’과 ‘헌신’을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판결의 날에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수행되어야 했다. 어쨌든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힌 것은 백성의 죄였다. 성소는 그들이 행한 일로 인해 흘려진 피로써 정결하게 되어야 했다.

적용 : 그대가 하나님 또는 교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행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대가 그것을 감사의 마음으로 행한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영감의 교훈
하나님이 택하신 금식 – “성경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으며’,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사 58:6, 10) 하는 것이라고 묘사한다. 여기에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업의 정신과 성격이 설명되어 있다”(시대의 소망, 278).

기도
아버지, 제가 마치 무슨 보상을 받아야 할 것처럼 행했던 모든 거짓 봉사와 경건에 대해 깊이 회개합니다. 제게 정직하고 순결한 믿음을 주셔서 자원하는 심령과 감사의 마음으로 섬기는 종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