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일흔 번씩 일곱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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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창 4:24)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마 18:22)

싸늘하게 식은 아벨을 품에 안았을 때 아담은 죄의 결과를 실감했습니다. 메시아로 기대했던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 후손들은 하나님 없는 문명사회를 이룩했습니다. 가인의 후손인 라멕은 한 소년을 죽이고 보복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보복의 노래를 예수님은 용서와 사랑의 멜로디로 바꾸셨습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라는 말은 가인의 형제살인과 관계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피 값을 가인에게서 찾으셨고, 가인은 방랑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군가의 손에 보복을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가인을 위해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고 하시며 표를 주어 이 살인자의 목숨을 보호하셨습니다. 숫자 칠은 창세기 2장 창조주일의 제칠일에 사용되었습니다. 방랑하는 영혼이 창조주를 기억하고 참 쉼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돌아오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숫자입니다.
라멕은 가인에게 주신 은혜의 말씀을 무자비한 보복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자기를 건드리면 칠십칠 배의 벌로 응징하겠다고 했습니다. 완전한 보복이 이루어질 때까지 철저하게 무한 보복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라멕이 남긴 보복의 정신은 인류를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고 대홍수 심판을 불러왔습니다.
베드로가 용서의 한도에 대해 예수께 질문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마 18:21-22) “일곱번, 일흔번씩 일곱번”은 칠십인역 창세기 4:24의 “칠배, 칠십 칠배”와 동일한 낱말입니다. 베드로는 가인에게 한 하나님의 말씀을 용서의 한도를 정하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예수는 라멕이 한 말을 취하되 그 속에 담긴 라멕의 정신을 백팔십도 바꾸어 대답하셨습니다. 사랑의 원천인 주님의 가슴 속에서 무한 보복의 말은 무한 용서의 말이 되어 흘러나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언제 희생당할지를 알려줄 때 일흔번씩 일곱번을 상기시키는칠십이레 예언을 주셨습니다. 주후 31년 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이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주님은 보복의 악순환을 끊고 의와 평화의 나라를 선물하셨습니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