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가죽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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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선악과의 맛에 취한 순간도 잠시, 그들은 벌거벗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의 달콤함은 찰나이고 결과는 수치와 죽음이었습니다. 원복음을 선포한 후 주님은 무화과 잎으로 가리고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은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줄 뿐 아니라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위대한 복음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2장과 3장은 “벌거벗음”과 “간교함”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롬”을 키워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태초에 그들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영화와 존귀로 옷을 입었기 때문입니다.(시 8:5) 그 영광의 옷이 벗겨졌습니다. 그들을 벌거벗음의 수치와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간교한 뱀이었습니다.
그들이 엮어 만든 무화과 잎은 죄의식과 수치심에서 해방시킬 수 없었습니다. 죄인의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주기 위해 무죄한 짐승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죽”(히. 오르)은 사람의 “피부”도 뜻합니다. 에덴에서 가죽이 벗겨져 죽은 짐승처럼 십자가에서 예수는 죄인을 위해 옷이 벗겨졌습니다. 머리에 쓴 가시관과 손발에 박힌 못과 허리를 찌른 창으로 피부가 찢겨졌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을 통해 주님은 인류에게 잃었던 영광의 옷을 다시 입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죄의 추악함과 수치스러움을 가리려는 어떠한 선행과 노력도 무화과 잎에 불과합니다. 시들고 썩는 잎 같은 인간의 의 대신에 그리스도는 그분의 의를 옷 입혀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아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변화된 사람이 됩니다.
“옷”(히. 쿠토네트)은 코트처럼 긴 옷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넉넉한 옷을 준비하셨습니다. 주님이 마음 문을 두드리실 때 열기만 하면 헤아릴 수 없는 은혜가 쏟아져 들어옵니다. 죄인을 위하여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이 그 아들과 함께 모든 선한 것을 흡족하게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의 생각과 뜻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는 심판의 날에 그리스도의 의만이 우리를 넉넉히 가려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를 벌거벗었다고 진단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계 3:18)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