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금요일 예수바라기]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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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출 30:19, 21)

우리는 흔히 번제단을 지나긴 했지만 물두멍에서 손발을 깨끗이 씻어야만 성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물두멍에서 손발을 씻는 것이 성소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을 하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집 나간 탕자를 반기시는 아버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집 나간 탕자를 아버지가 반기시는 건 물두멍에서 탕자가 그 더러운 손발을 깨끗하게 씻었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아버지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 대신 ‘생명의 속전’을 내어주신 아버지의 긍휼과 은혜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그 은혜는 더럽고 냄새나는 탕자 같은 우리로 삶의 정결을 소원하게 하십니다. 아직은 비록 이 땅에 있지만 하나님 닮기를 진실로 소원하게 하십니다. 그 은혜로 인해 날마다 감격에 벅차오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그 더러운 손과 발을 씻고 또 씻지 않을 수가 있겠는지요? 그러니, 우리는 물두멍에서 씻고 또 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은혜가 우리로 날마다 물두멍으로 나아가 수족을 씻고 또 씻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우릴 둘러 진치시는데 우리는 혹시 손발이 부르트도록 씻고 또 씻음으로 은혜 대신 그 정결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 시도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은혜를 멸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는 그 반대로 물두멍에서 손발을 씻지도 않으면서 그저 은혜를 노래만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은혜를 빙자하여 방자히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헤를 멸시하든, 은혜를 빙자하여 방자히 행하든, 그런 우리에겐 결코 구원이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은혜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은혜 위에만 기초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잊지 말고 기억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물두멍이 아닌 <피>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대속의 피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은혜>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 안에 거하면 그 보혈의 은혜는 우리로 정결을 사모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 닮기를 간절히 소원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소망하나 아직 우리는 이 땅에 맨 발로 서 있으니, 우리는 날마다 성막 뜰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휘장 너머 보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은혜의 보좌로 행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 어디에 있든 어디로 가든 우리는 항상 예수의 피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오직 우리 주 예수의 피를 힘입어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길 소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히 10:19-2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