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월요일 예수바라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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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성경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에 하나가 모리아산 스토리입니다. 그 주인공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험하고, 하나님이 준비할 것이고, 하나님이 이삭을 찌르려는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게 했고, 하나님이 수양을 준비했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그곳은 여호와 이레, ‘여호와께서 준비하심’이라고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창세기 22장의 주인공은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사건은 자기 아들을 제물로 내준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아들이 희생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인 우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기까지 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 나타나 있습니다.
모리아산을 향해 걸어간 삼일 길은 아브라함 평생에 가장 긴 시간이었습니다. 번제에 쓸나무를 쪼개고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이미 이삭은 아브라함 마음속에 죽은 아들이었습니다. 애간장을 태우는 기도로 매 발걸음을 옮겼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창세전에 아들을 갈바리에 보내기로 결심하신 하늘 아버지는, 겟세마네에서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는 독생자 아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계셔야만 했습니다. 피 흘리는 십자가상의 아들을 암흑 속에서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사흘간 무덤 속에 누워있는 아들 곁을 지키셨습니다. 우리는 아들 뿐 아니라 아버지의 고통을 통해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말 속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 있음을 확신하였고 그 믿음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준비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라아’는 ‘보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히브리적 사고는 관념적이기보다는 행동을 중시합니다. 보는 것은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보는 것과 준비하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신다는 말과 같습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시는 분이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의 하나님입니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