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창 25:32~33).
거래
에서의 당장의 필요와 야곱의 수완이 만나 거래가 이루어집니다. 에서는 당장 필요한 먹을 것을 얻고 야곱은 자기가 오매불망 원했던 장자의 명분을 얻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정말 그때 장자의 명분을 얻었던 것일까요? 이삭이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 거래에 동의했을까요?
에서는 그 거래를 했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잃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34절). 그는 이미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 거래는 마음속의 가벼움이 드러난 표면적 결과에 불과했습니다.
야곱은 거래에 성공했다고 해서 장자의 명분을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3절).
여기서 강하다는 의미는 단순히 힘이 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에서는 야곱보다 언제나 물리적 힘이 더 강했습니다. 후에 에서는 큰 부족을 이끄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그 가족은 주로 도망을 다니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강하다는 의미는 완력이나 권력보다는 신앙적 의미입니다. 장자의 명분 그중에서도 영적 계보(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가 그를 통해 이어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기의 문제일 뿐이지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습니다.
신앙을 사고 팔 수 있나?
신앙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부르심은 사고 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과 부르심을 가볍게 여기기에 사고 팔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에서처럼, 세상에서 이익을 얻는 일을 위해 영원을 향한 부르심을 포기합니다. 그것을 통해 금방 사라질 팥죽과 떡을 얻습니다.
또한 야곱처럼, 신앙적 부르심을 자기 생각대로 조정하기 위해 인간적인 거래를 시도합니다. 그는 부르심의 가치는 알고 있었지만, 그 부르심이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성취되는 지에 대한 이해와 경험은 부족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거래는 야곱의 경우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하는 많은 고난을 자초합니다.
부르심을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하나님과도 인간과도 거래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와 인도하심을 기다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