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사라가 누린 햇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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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창 23:1).

한 여인의 일생

사라는 아브라함과 함께 처음으로 성경에 등장하지만-“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창 11:29), 그에 대한 첫 설명은 그리 복되지 않습니다.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창 11:30).

자식이 없는 그 여인은 언제나 박복하였습니다. 자식이 없기에 남편이 자신을 두 번이나 배신을 해도 여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자식이 없기에 자기 몸종을 남편에게 주어 아들을 낳게 하는, 원치 않는 결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아들을 낳은 자기 몸종에게 무시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사라의 몸에서 약속의 아들이 태어난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정말 바라는 일이었지만 실제로 일어날까에 대해 의심이 드는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아브라함을 따라 갈대아 우르를 나올 때가 이미 65세이었습니다. 그리고 25년을 더 기다려 90세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 이삭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기에 인간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히 11:11, 12).

히브리서에 따르면 사라가 이삭을 낳은 것은 죽은 자 같은 한 사람이 생명을 낳은 경험이었습니다. 즉 여인은 부활을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사라의 소망

사라의 소망은 오직 아들을 낳는 것이었습니다. 사라는 65세가 지나고 90세가 되었을 때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 여인의 일생은 절망의 65년, 의심과 소망이 함께 하는 25년, 소망을 이룬 37년으로 정리가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37년이 아닌, 127년 모두가 사라가 누린 햇수라고 말합니다. 소망이 이루어지면 이전에 절망과 의심의 시간도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됩니다. 모두 소망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 됩니다.

우리의 소망도 하나님의 아들과 연관을 가집니다. 절망의 시간도 있고, 의심의 시간도 우리에게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 우리 생애에서 약속이 이루어지면 그 절망과 의심의 시간도 아름다운 누림의 햇수가 모두 재해석 됩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 소망을 가집니다. 오늘 저희가 사는 시간이 아름답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