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목요일 예수바라기] 복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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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1)

아브라함이 소명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땅(가나안)과 큰 민족(이스라엘)과 큰 이름과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중에 가장 많이 강조된 것은 복입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너는 복이 될지라,’‘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2-3) 아브라함은 전 세계의 모든 민족에게 축복이 되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 기사 이전에 ‘복을 주다’가 강조된 것은 창조기사입니다. 하나님은 생물들과 사람을 창조했을 때 그들을 복주셨고, 창조의 기념일인 제칠일을 축복하셨습니다.
축복은 생명과 관계가 있습니다. 죄는 죽이는 것입니다. 복은 살리는 것입니다. 참 축복은 창조 때에 주신 생명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의 두 절 속에 무려 다섯 번이나 ‘복을 주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담이 창조 때의 축복을 상실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 축복이 회복될 것이었습니다. 창조 때의 축복을 회복시키는 이는 인간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입니다.
아브라함의 소명 속에 두 개의 명령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나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가나안은 목적지입니다. 가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간 그곳에서 어떤 존재로 사느냐 입니다. 하나님은 ‘너는 복이 되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너는 복이 되어라’고 명령하십니다. ‘가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브라함처럼 떠났다 할지라도 그 삶이 세상에 복이 되지 못하면 천국 문 앞에 서서 자기도 가지 않고 남도 가지 못하게 하는 저주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 차원에서 복은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회복시키시는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복이고 복의 근원입니다. ‘가라, 복이 되라’는 명령은 세상의 것에서 떠나서 예수처럼 되라는 도전입니다. 내가 예수처럼 살 뿐 아니라 예수처럼 사는 사람들로 세상을 채우라는 위대한 도전입니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