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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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야돈)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창 6:3)

아담의 타락으로 세상에 들어온 죄는 부패한 감화를 누룩처럼 매우 신속하게 세상에 퍼뜨려 세상은 멸망을 향해 질주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따르면 창조로부터 노아홍수까지 불과 1656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창 6:6) “근심하다”는 잉태와 해산에 수반되는 고통과 수고와 관련된 말입니다. 예수님은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심판하는 권세를 갖고 계신 예수님은 죄인에게 칼을 휘둘러대시는 분이 아닙니다.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예루살렘을 보며 우셨던 분입니다.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심장이 터져 죽은 분입니다. 죄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마음이 찢어지는 하나님입니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히. 야돈) 아니하리니.” “야돈”은 성경에서 여기에 단 한번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명확한 뜻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전통적으로 야돈을 “머물다”로 해석합니다. 이 경우에“나의 영”은 인간 창조 때에 하나님이 불어넣은 생기입니다. 하나님이 호흡을 거두시면 인간은 죽습니다. 죄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해 그분의 생기를 거두겠다고 하십니다. 그분은 발걸음을 머뭇거립니다. 떠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6:3)
야돈을 “다투다, 심판하다”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120년의 은혜의 기간 동안 노아시대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과 씨름하며 애쓰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노아 시대에 활동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갇혀 있는 영들에게 가서 기쁜 소식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들은 옛날 노아가 배를 준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참고 기다리셨으나 하나님께 불순종하던 영들입니다.”(벧전 3:19-20, 현대인의 성경)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죄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풀어주기 위해 성령을 통해 호소하셨습니다. 노아가 외치는 기별과 방주를 짓던 망치 소리는 무시를 당했지만 죽음의 줄에 서 있는 인류 중 한명이라도 더 구하시려고 죄인과 씨름하셨습니다. 인류가 타락한 이후 주님이 죄인과 씨름하지 않은 때는 한순간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씨름은 무한정 계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끝이 가깝습니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