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시편 119편 153~160절, (20연, 레쉬) 어떻게 지내세요?

36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시 119:153).

여전히 고난 중

50, 67, 71, 75절에서도 사용된 고난이라는 단어가 여기서도 나오는 것을 보면, 시인의 고난은 여전히 진행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으로 인해 그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않고 주의 말씀의 길로 행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에게 고난은 오히려 복이었습니다.

세상에 굴복하는 자들은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154절)라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고난 받는 자를 변호하실 분은 십자가에서 고난 받아본 분 외에는 없고, 말씀대로 살리실 분도 말씀대로 살아본 분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피해 타협하고 굴복하는 자들은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고난 받은 분을 만날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들은 구원에서 멀어졌습니다(155절). 인간이라면 누구나 좌절과 유한성, 낙심, 고통, 모든 것의 끝에서 구원받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주의 법에서 먼 자들(150절)은 주님에게서 먼 자들이고, 구원에서도 먼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침마다 잠에서 깨면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 13:11)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날 고난 속에 있었을지라도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면 구원이 하루 더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게 많은 것

156절과 157절은 두 가지 “많음”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많으오니 주의 규례들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156절).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긍휼함이 많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핍박하는 자들과 대적이 많으므로(157절) 크신 긍휼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 삶에는 대적들이 많지만, 오히려 주의 자비는 그보다 더 풍성합니다. 대적들이 가까이 오면 하나님은 더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난을 당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고후 4:8).

그래서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질문에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는 약속이 저를 붙들어 주십니다. 어둠에 에워싸이는 일이 허다하지만, 고난이 제게 유익이 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는 과정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현재와 미래를 참된 주의 말씀에 영원히 내맡기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기도) 고난 중에서도 많은 긍휼을 베푸시는 주를 바라보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