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왕상 7:1).
갑자기 왕궁이?
열왕기상 5~8장은 성전 건축 준비부터 성전 봉헌식까지 성전 건축 전 과정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중간(왕상 7:1-12)에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의 건축 과정이 언급됩니다. 특히 그 부분은 성전 건축과 성전 마당에 있는 기구들을 만드는 과정 사이에 나옵니다.
이로 보아서 성전과 왕궁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 보입니다. 실제로 두 건물은 하나의 구역 안에서 하나의 커다란 도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솔로몬에게 왕궁의 건설은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려는 의도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하는 도성을 완성하는 성전 건축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그렇게 솔로몬은 자신의 왕궁을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지었습니다.
누구를 위한 왕궁인가?
그런데 솔로몬의 왕궁은 성전보다 두 배 정도 더 컸습니다(왕상 7:2). 아무래도 많은 인원이 거주해야 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위해 궁을 지었는데(8절) 그 집도 예루살렘 성안에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궁은 성전이 아닌 바로의 딸을 위해 지은 궁과 붙어 있었습니다. 열왕기는 솔로몬이 본격적인 통치를 시작하는 3장 첫 절에서 바로의 딸에 대해 이야기하고, 솔로몬 왕궁을 지을 때 바로의 딸을 위해 왕궁을 건축한 이야기를 다시 반복합니다.
솔로몬의 왕궁은 분명 솔로몬 본인의 궁입니다(1절). 그러나 그 왕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분명해야 합니다. 솔로몬의 궁은 자기 왕궁이었지만 성전 건축의 과정 가운데 포함된 것으로 보아 하나님을 위한 건축물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딸의 집은 그 성전 건축물에서 배제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솔로몬이 분명히 알았다면 성전 건축 과정에서 두로에서 온 기술자 히람(13, 14절)을 중용하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성전건축할 사람을 찾았을 것입니다. 두로 왕 히람(기술자의 이름과 왕의 이름이 같습니다)의 도움을 받을지라도 좀 더 신중하고 제한적으로 했을 것입니다. 강국이었던 이집트와의 관계와 지중해 무역을 장악한 두로 왕과의 관계가 염려되었다면,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 의지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만국을 위한 성전인 것만큼이나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만국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기도) 우리 자신과 거처,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확인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