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누가 능히 서리요?

48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7)

네 마리의 말(계 6:1-8)

우리는 화려한 사두마차를 꿈꿉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 위에서 로데오 경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네 말을 탄 자들에게 휩쓸리는 인생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인생과 세상은 이기고 이기길 원합니다. 그러나 화평은 사라지고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이곤 합니다. 저울을 가지고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고 평가받곤 합니다. 그것도 실제 가치보다 훨씬 낮게 합니다. 우리 일생은 밀 한 되이고 보리 석 되에 불과합니다. 결국은 사망을 이길 수 없는 것이 우리이고 세상입니다.

사망과 순교(계 6:9-11)

이제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의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궁극적인 심판을 간구합니다. 억울함을 풀어주실 날을 간구합니다. 심판장이신 대 주재께서는 첫째, 흰옷을 그들에게 주십니다. 둘째, 잠시 쉬라고 하십니다. 억울함과 비통의 시간을 쉼의 시간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셋째, 예수님처럼 죽임을 당하는 일이 더 있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그 고난에 동참하는 일이 흐름을 바꿉니다. 그 일은 결국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린양이 이 책의 인들을 떼시기에 성도들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제단 아래 기도하는 성도들의 순종이 순교가 되어 그 수를 채울 때 죽음을 이기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이기고 또 이기는 자들이 나타납니다.

누가 서리요(계 6:12-17)

세상에 죽음의 날이 임합니다.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에 설 자가 누구 있겠느냐고 그들은 부르짖습니다.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계 5:2)에 질문에 어린양이 합당하게 나와서 구원과 심판의 책을 펼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진노의 큰 날에 누가 서리요?”라는 외침에 응답할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된 자들입니다(계 7:14). 144,000이 살아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자들만을 말하는 것인지는 의논할 여지가 있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것은 분명합니다(계 12:17).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죽음을 넘어선 존재인 것은 분명합니다.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말에 능히 설 수 있게 하소서. 죽음의 날에 설 수 있게 오늘 주님의 죽으심을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