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월요일 장년 교과] 선동 (사 36: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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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랍사게의 말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였지만 예루살렘의 모든 소망이 사라진 것 같은 그때야말로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이었다.

“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속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자기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사 36:18).

앗수르의 통치자들은 잔인할 뿐 아니라 매우 영리했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부와 권력이었다(사 10:13~14 참고). 만일 말로 설득해서 거주자들을 항복시킬 수 있다면 굳이 무력을 사용함으로써 자원을 허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산헤립은 라기스를 포위하여 공격하는 동안에 그의 ‘랍사게’(고위 관직 중 하나)를 보내어 선동을 통해서 예루살렘을 항복시키려고 했다.
랍사게는 유다를 위협하기 위해 어떤 논리를 폈는가?(사 36:2~20; 왕하 18:17~35, 대하 32:9~19 참고)
랍사게는 상당히 강력한 논리를 펼쳤다. ‘애굽은 이미 약해져 있기 때문에 너희는 애굽을 의지할 수 없다.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할 수도 없는데, 왜냐하면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하고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경배하게 함으로 여호와를 불쾌하게 했기 때문이다. 너희는 2천 필의 말을 주어도 그것들을 탈 만큼 훈련된 군사가 없다. 그러니 포위되어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고통을 피하려면 지금 항복하라. 그러면 잘 대우하겠다. 다른 신들도 그들의 나라를 앗수르의 손에서 구할 수 없었으니, 여호와도 너희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랍사게의 말은 진실이었는가?
그의 말은 많은 진실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게다가 두 가지 사실이 그의 말에 설득력을 더해 주었다. 첫째, 그는 방금 48㎞ 떨어진 라기스에서 왔는데, 앗수르에 대항하던 강력한 요새들도 무너지고 있었다. 둘째, 그는 막강한 앗수르의 대군을 거느리고 왔다(사 36:2).

교훈 :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랍사게의 말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였지만 예루살렘의 모든 소망이 사라진 것 같은 그때야말로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이었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 그대가 그때 예루살렘에 살았다면 랍사게의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어서) 유다 사람들은, 북방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포함하여, 앗수르에 패배한 다른 나라의 최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견지에서 볼 때, 예루살렘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왕하 18:9~10, 사 10:8~11 참고). 히스기야가 예루살렘 성전 예배를 강화하기 위해서 여러 산당을 파괴했다는 랍사게의 말도 사실이었다(왕하 18:4, 대하 31:1). 하지만 이러한 개혁이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했다면 그의 백성에게 희망을 걸 만한 무엇이 남겠는가? 과연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구하실 것인가? 아니 구원하실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었다.

적용 : 어떤 위협이 있을지라도 타협하거나 항복해서는 안 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기고만장했던 랍사게 – “군대 장관들은 성문 밖에서 회담하고 있었으나 성벽 위에 있는 파수꾼이 회담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앗수르 왕의 대표자들이 유다 수령(首領)들에게 저희의 제안을 큰소리로 말할 때에 유다 수령들은 성벽 위에 있는 사람들이 회담의 진행 상태를 알지 못하도록 유다 방언으로 말하지 말고 아람 방언으로 말하도록 요청했다. 랍사게는 이 제의를 비웃고 음성을 더 높여 유다 방언으로 계속 말했다”(선지자와 왕, 353).

기도
아버지, 만일 시련의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보이지 않았다면,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계심을 나타내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믿음의 손을 꼭 붙잡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