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월요일 장년 교과] 다시 새롭게 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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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자아를 내려놓지 않고 의도적으로 그분과의 관계를 단절하기로 선택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할 수 없으시다.

히브리서 6:4~6, 마태복음 16:24, 로마서 6:6, 갈라디아서 2:20, 갈라디아서 5:24, 갈라디아서 6:14을 비교해 보라.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헬라어 원어에서는 “할 수 없나니”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자들”을 새롭게 하실 수 없으시다(히 6:6). 바울은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음을 강조한다(행 4:12). 그리스도 외의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것처럼(히 6:18), 또는 “믿음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불가능하다(히 11:6).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것은 믿는 자와 예수님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묘사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누리던 권위와 권력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존재를 제거하겠다는 의도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마찬가지로, 복음은 가장 근본적인 단계를 시작으로 개인의 자주권과 결정권에 도전을 던진다. 그리스도인 삶의 본질은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마 16:24). 이것은 “세상”(갈 6:14)과, “옛 사람”(롬 6:6), 그리고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갈 5:24)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삶의 목적은 우리가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아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새로운 생명을 받을 수 없다(롬 6:1~11).
예수님과 자아 사이의 투쟁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투쟁이다(롬 8:7, 8, 갈 5:17). 이것은 한 번에 마쳐지는 싸움이 아니다. 이 본문의 말씀은 “옛 사람”과 “육신”과의 싸움에서 어쩌다 한 번씩 실패하는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묵상>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히 6:6)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어서) 여기서 말하고 있는 죄는 참된 구원과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경험한 후에도(히 6:4, 5) 예수님이 자신이 원하는 삶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그분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기로 선택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편, 이 말은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에게서부터 완전히 떠나기로 선택하지 않는 한, 그 사람에게는 여전히 구원의 소망이 있음을 분명히 한다.

<교훈>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자아를 내려놓지 않고 의도적으로 그분과의 관계를 단절하기로 선택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할 수 없으시다.

<적용>
십자가를 지기 위해 자신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대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내려놓기 가장 힘든 것은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미혹의 영에게 지배받는 일이 재연됨 –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장면이 재연되어 왔으며 다시 큰 규모로 재연될 것이다. 사람들은 사탄의 속성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대원수의 미혹은 큰 힘을 가질 것이다. 그리스도 외에 어떤 인도자에게라도 애정을 준 자들은, 매우 황홀하여, 그 힘에 의하여 영혼들이 진리를 듣는 데서 돌이켜서 거짓을 믿게 되는, 그 미혹의 영에 의해 몸과 마음이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3권, 415).

<기도>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눈앞의 현실이 저에게 큰 장애물처럼 보일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더 크신 하나님을 주목하여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