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수요일 장년 교과] 주의 분노를 부으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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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의 거친 표현과 복수를 위한 기도는 의구심을 갖게 하지만 이는 정의에 대한 호소와 표현이며 그는 복수를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손에 맡긴다.

시편 58:6~8, 69:22~28, 83:9~17, 94:1, 2, 137:7~9을 읽어 보라. 이 시편들은 어떤 감정을 나타내는가? 이 시편에서 심판의 주체는 누구인가?

어떤 시편은 기자 자신이나 백성을 위협하고 해를 끼친 개인과 국가에 복수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한다. 이런 시편들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원칙(마 5:44)과의 명백한 불일치, 또 거기 사용된 거친 언어 때문에 당혹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압제 가운데 시편 기자의 분노는 합당한 것이다. 이는 시편 기자가 다른 사람들보다 옳고 그름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자행되는 악에 더욱 분노하며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어디에서도 자신이 복수의 주체가 될 것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보복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 시편은 하나님의 언약의 저주(신 27:9~16)를 상기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행동해 주실 것을 간청한다.
시편은 시편 기자의 단순한 기도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예언하며 선포한다. 시편 137편은 선지서와 마찬가지로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다른 나라를 황폐하게 한 바벨론의 행위가 그들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시편은 악이 결국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전한다.
보응은 공의와 은혜 가운데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나아가 그들의 회심을 바라도록 부름받았다(시 83:18, 렘 29:7).
이 시편들을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원칙에 맞게 해석하려 시도할 때에도 그 안에 표현된 고통스러운 경험을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고통을 아시며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 116:15, 개역)라는 말씀으로 그들을 위로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분의 백성에게 목소리 높여 모든 악에 대항하고 주님의 나라가 충만히 임하기를 구하도록 요구한다.

(이어서) 시편은 또한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변해 주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을 알고 계시고 머지않아 정의가 이루어질 것임을 알려준다.

<교훈> 시편의 거친 표현과 복수를 위한 기도는 의구심을 갖게 하지만 이는 정의에 대한 호소와 표현이며 그는 복수를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손에 맡긴다.

<묵상> 때로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끔찍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보고 기도해 보십시오.

<적용>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향한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 시편은 그런 감정들을 다루는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영감의 교훈>
“악한 행위가 잊어버린 바 되거나 간과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국가들을 심판할 재료를 간직하고 계신다. 이 세상 역사의 모든 세기를 통하여 악한 일꾼들은 진노의 날에 임할 진노를 쌓아 왔다. 그 범죄가 정해진 하나님의, 자비의 영역에 완전히 이르는 때가 되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그치게 될 것이다. 하늘의 기록 책에 집계된 총계가 범죄의 양을 다 채웠음을 나타낼 때 자비가 섞이지 않은 진노가 임할 것이다”(교회증언 5, 523~524).

<기도> 제 안에 거친 마음이 끓어오를 때에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불의와 악한 역사를 보면서, 기도하고 노력해도 남아있는 상처가 있으니 회복할 수 있도록 힘주시고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예수님처럼 사랑하게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