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월요일 장년 교과] 압제당하는 자를 위한 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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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가난하고 압제당하는 자들을 위한 공의를 보이신다. 이는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돌보심과 신자들의 그들을 향한 의무를 포함한다.

시편 9:18, 12:5, 40:17, 113:7, 146:6~10, 41:1~3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기별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 궁핍한 사람, 억압당하는 사람, 고아, 과부, 홀아비, 나그네와 같이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을 향한 공의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신다. 시편은 구약 성경이 그러한 것처럼 이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출 22:21~27, 사 3:13~15).
많은 시편에서 “가난하고 궁핍한 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민족이나 종교의 범주로 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돌보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표현은 물질적 빈곤만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취약성과 무력함까지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에 호소하는 표현이며, 고통받는 사람을 도우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나타낸다.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표현은 또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고백하고 자기 의지와 자기 주장의 어떤 흔적도 포기하는 성실성, 진실성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연결된다.
또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시 41:1~3)은 하나님을 향한 그분의 백성들의 신실함을 보여준다. 약자에 대한 악행은 성경 시대에 특히 가증스러운 죄악이었다(신 15:7~11). 시편은 신실한 사람들이 모든 압제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도록 권면한다.
시편은 또한 유한한 사람의 방법을 지혜와 안전의 궁극적인 원천으로서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강조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인간 지도자와 제도가 궁극적인 구원을 주는 것처럼 생각하는 유혹을 물리쳐야 하며 그들의 방법이 하나님의 길과 다를 때에 더욱 그러하다.
주님은 가난한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셨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스스로 가난해지셨으며 그분의 가난하게 되심을 통해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게 하셨다(고후 8:9).

(이어서) 그리스도의 부요함에는 죄로 인한 모든 압제로부터의 구원이 포함되며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을 약속하신다(계 2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재판관으로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모든 학대와 의무 태만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시편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마 25:31~46).

<교훈> 하나님은 가난하고 압제당하는 자들을 위한 공의를 보이신다. 이는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돌보심과 신자들의 그들을 향한 의무를 포함한다.

<묵상> 오늘 우리는 주변에 있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습니까?

<적용> 그대는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기도해 보십시오.

<영감의 교훈>
하나님께서 시인하시는 봉사 사업 ~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 자들의 마음속에는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부드러운 동정심 곧 그분이 당신의 생명을 버려 구원하실 만큼 귀하게 여기셨던 자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영혼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어떤 예물보다도 무한히 귀중한 것이다. 궁핍한 자를 돌아보지 않고 낯선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면서 외형적으로 위대한 사업에 온갖 정력을 기울이는 일은 하나님께서 시인하시는 봉사가 아니다”(실물교훈, 383~384).

<기도> 우리를 위해 낮아지시고 가난한 자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자비하심을 찬양합니다. 저희는 교만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주님처럼 낮아질 수가 없습니다. 주께서 어려운 자들을 위해서 보이신 사랑을 조금이라고 더 닮도록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