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나의 이야기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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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교훈”(시 89:1)

삶의 의미를 세우는 네 번째 기둥은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는 ‘구속적인 이야기’라고도 이름을 붙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 특히 불행한 일들을 재 해석해서 자신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한 축구선수가 경기 중 부상으로 몸이 마비됩니다. 그 것은 현실입니다. 그 현실 자체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 사건을 액면 그대로 보면 절망스럽지 요. 그도 처음에는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다른 이야기를 짜내기 시작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상 전 나는 목적이 없었어요. 나는 파티를 많이 벌였고 매우이기적인사람이었어요.그러나부상은내게내가더좋은사람이될수있음을깨닫게 해주었답니다.” 자신의 불행에 대한 그런 편집이 그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자신에게 그런 이 야기를 한 후 그는 어린이들의 멘토로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삶의 목적을 발견했습니 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었죠.
그러나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바꾸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종종 상담사 나 치유사로부터 도움을 얻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우리 자신의 삶을 깊이 되씹음으로써 스 스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배제 한채자기자신안에서해결책을찾고자고통을겪고몸부림치며이런결론에이르렀고다 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하나님을 믿으며 진실하게 살려고 힘쓰지만 크게 보면 우리도 어 느덧 어느 선에 가면 한계에 부딪히고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은 구하고 기도하 지만, 즉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기 때문에 순종 하지만, 여전히 어떤 의미를 찾지 못하고 허우적거립니다. 요한은 우리의 그런 상태에 대하여 정확한 처방을 내립니다. ‘사귐’의 차원을 잊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사귐의 차원을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사귐이 없다면 막연하게 기도하고 막연하 게 잘 되기를 바라고 막연히 순종할 뿐입니다. 반면, 사귐에는 할 이야기가 생깁니다. 사귐에 서 사랑이 깊어지고, 소속감이 싹트고, 목적은 더 뚜렷해지고 자아상이 확립됩니다. 나의 삶 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 어려운 일도 구속적으로 다시 이해하여 나의 이야기로 새로운 의미 를 부여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을 위해 하루를 시작해 볼까요?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