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9일 목요일 예수바라기] 시편 119편 89~96절 (1), (12연, 라메드) 만물의 기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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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시 119:92).

극단적인 대비

시편 119편의 전반부가 마무리되는 11연에서 시인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허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의 후반부가 시작되는 12연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시인과는 다르게 흔들림 없는 견고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허약한 시인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서 있는 말씀을 붙들고 놓지 않습니다(89절).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습니다(90절). 만물은 주의 종이 되어서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습니다(91절). 이 창조 교리는 우주의 원자 하나까지도 언약의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창조 세계의 어느 한 귀퉁이도 사탄의 수중에 있지 않습니다. 사탄만이 말씀을 주신 창조주의 주권 밖에 있습니다.

사탄이 호시탐탐 노리는 가운데 고난으로 멸망하지 않으려면, 시인은 이 견고한 주의 말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는 길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92절). 고난이 자동으로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을 받을 때 그대로 멸망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억울하게 고난을 당할 때 분노가 일어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주의 견고한 말씀을 붙잡고 말씀을 기뻐하는 가운데 고난을 감당할 때만 고난을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주는 위로

스펄전은 92절의 말씀을 이같이 해석했습니다. “고통에 지쳐 머리가 텅 비어버린 것 같고 이성이 마비된 듯한 지경이 되었을 때, 달콤한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의 확신을 우리 귀에 속삭입니다. 고난으로 지친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가슴에 기대어 평안과 안식을 누립니다.”

더 나아가서 92절은 말씀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사람의 모습이야말로 참된 신자의 증거라고 노래합니다. 주의 말씀은 만물의 기초이자 터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안전은 말씀을 기뻐하는 우리의 감정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쁨은 말씀으로 세계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과 언약적인 관계를 누리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렇게 시편 119편 후반의 첫 연은 하나님의 견고한 말씀과 그 말씀을 누리는 시인의 기쁨으로 시작합니다.

기도) 주의 말씀을 붙잡고 견고하게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