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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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6)

제사장이 되어(계 20:6)

천년기에 왜 성도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의 역할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악인들에 대한 심판을 확인한다는 면에서 왕 노릇은 얼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미 구원받을 자가 결정된 상황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한다는 점은 고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죄의 역사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마쳐지질 않을까요? 왜 성도들이 제사장과 왕으로 역할을 담당하는 천년기가 필요할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늘나라는 맹목적 순종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인 절대적 순종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가면 기계적으로 이제 죄에서 벗어나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죄를 벗어날 수 있다면 십자가가 필요할까요? 또 십자가 이후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알아가는 긴 시간이 필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

우리가 아는 사람들의 운명은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에 모두 걸쳐 있습니다. 혹자는 우리는 하늘에 가서 세 번 놀란다고 합니다. “어떻게 내가 이곳에 있지? 어떻게 저 사람이 이곳이 있지? 어떻게 그 사람이 이곳에 없지?”

천년기 동안 베풀어지는 재림 후 조사심판의 과정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이 얼마나 공의로운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내가 사랑하고 당연히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한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이유와, 내가 당연히 구원받지 못하리가 생각한 사람이 구원받아 얼굴을 마주 대하는 상황에 대한 이유를 심판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공의로운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해서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들은 둘째 사망에 참여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인격적으로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천 년 동안 제사장과 왕 노릇을 하던 자들은 천년기 이후에 세세토록 왕 노릇을 하게 됩니다(계 22;5, 천년기 이후에는 제사장 역할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제야 하늘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가 시작됩니다(계 21:5).

첫째 부활을 사모합니다. 천년기 동안 주님의 사랑과 공의를 확인하게 하소서. 오늘 이 시간 주님의 사랑과 공의를 미리 맛보아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