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음녀는 왜 앉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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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계 17:1)

큰 음녀

음녀 즉 타락한 연합 종교 세력 앞에는 “큰” 이 붙습니다. 큰 음녀(계 17:1)이고 큰 바벨론(5절)이고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18절)입니다. 우리 현대인처럼 음녀는 크고 높고 견고한 것을 좋아합니다.

앉아 있는 음녀

음녀는 앉아 있습니다. 여기서 앉다는 좌정하다는 의미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을 흉내 냅니다.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을 상징하는 물(계 17:15; 17:1) 위에 앉습니다. 그런데 그가 있는 곳은 물 없는 광야입니다(계 17:3).

순결한 여자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광야에서 독수리의 날개로 보호하시는 하나님에게 양육을 받았습니다. 음녀는 광야에서 순결한 교회를 흉내 내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며 생존을 위해 백성들을 자기 물로 삼아 통치합니다.

그가 사람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광야에서 백성과 무리를 끌어드리는 방법은 붉은빛 짐승(정치세력)을 타는 것입니다(3절). 주님은 나귀를 타고 오시고 백성을 섬기셨는데 그 여인은 짐승을 타고 백성을 통치합니다. 그 여자는 자줏빛과 붉은빛 옷을 입으며 예수님을 흉내 내지만 예수님처럼 고난의 잔을 마시지는 않습니다. 그는 금과 보석과 진주로 자신을 꾸미고 고난의 잔 대신에 금잔을 마십니다. 그 금잔에는 음행의 포도주가 있고 가증한 물건들이 들어 있습니다(4절).

결국 그는 어린양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어린양과 더불어 싸우고자 합니다(14절). 어린양은 성도들을 위해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았는데, 그 여자는 성도들의 피를 흘림으로 보좌에 앉아 통치하고자 합니다(6절). 결국에는 자기 짐승과 백성에게 미움을 받고 망하게 되고 벌거벗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몸은 부활하지 못하고 살이 먹히고 불에 살라집니다. 고난 없이 통치하려는 음녀는 결국 일곱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16, 1절).

내 잔에는

나의 잔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주님이 주신 고난의 아픔이 담겨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욕망과 음행, 가증한 것이 담겨 있습니까? 주님의 구원의 생수가 담겨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가 담겨 있습니까?

주님이 주신 내 잔을 살펴봅니다. 내 안을 살펴봅니다. 욕망의 바벨론이 내 안에서 아직도 무너지지 않았는지 살펴봅니다. 주여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