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 일요일 장년 교과] 새 언약의 필요성

115

옛 언약은 백성들에게 장차 다가올 예수님의 사역을 가리켜 보여 줄 뿐 온전한 속죄와 구원을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새 언약이 필요했다.

히브리서 7:11~19을 읽어 보라. 새 언약이 필요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히브리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이 되신 사실은 새 언약이 개시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옛 언약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에 근거하여 주어진 것이었다(히 7:11).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했으며 율법은 그 외의 사람이 제사장이 되는 것을 금지했다. 그래서 저자는 제사장 직분의 변화는 제사장 직분에 관한 율법과 언약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결론 내린다(히 7:12, 18, 19).
옛 언약의 문제는 그것이 온전함을 제공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히 7:11). 바울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과 그 사역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데(제사, 절기, 등등) 그들을 통해 바쳐진 제물들은 참되고 온전한 속죄 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제공할 수 없었다(히 10:1~4, 히 9:13, 14, 히 10:19~23).
새 언약이 필요했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옛 언약을 주셨을 때 이스라엘을 소홀히 대하셨다는 뜻은 아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의 사역과 성전의 의식들은 그들을 우상 숭배로부터 보호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다가올 예수님의 사역을 가리켜 보여 주기 위해 제정되었다. 히브리서는 모든 제사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히 10:1)임을 강조한다.
모든 제사는 예수님을 가리켜 보여 줌으로 백성들에게 그들의 소망과 믿음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 사 53장과 비교)에게 두도록 도와주어야만 했다. 바울이 율법에 관하여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 3:24) 또는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라고 이야기했을 때 이와 같은 개념을 강조하고 있던 것이었다.

<묵상>
율법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율법을 아무리 완벽하게 지킨다고 할지라도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어서) 다시 말해, 십계명이 아무리 완벽하다 할지라도 그 자체는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줄 수 없다(롬 3:20~28, 롬 7:12~14). 십계명은 의로움에 대한 완전한 기준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거울을 본다고 해서 얼굴에 있는 주름이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그 자체가 의로움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우리가 온전한 의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대속주 되시는 예수님이 필요하다.

<교훈>
옛 언약은 백성들에게 장차 다가올 예수님의 사역을 가리켜 보여 줄 뿐 온전한 속죄와 구원을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새 언약이 필요했다.

<적용>
율법 자체가 우리를 구원할 수 없지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허락하신 율법에 기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율법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영감의 교훈>
복음은 율법을 높여줌 – “성경에 ‘옛’ 언약이라 불리는 다른 약속이 시내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체결되었고 그것은 희생 제물의 피로 그 때에 비준되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비준되었고 그것을 비준시킨 피가 처음 언약의 피보다 후에 흘려진 까닭에 그것은 ‘둘째’ 또는 ‘새’ 언약이라고 불린다. 새 언약이 아브라함의 시대에도 유효하였던 것은 그것이 그때에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로 확증되었다는 사실로써 분명하다”(부조와 선지자, 371).

<기도>
옛 언약이 이룰 수 없었던 온전한 속죄와 구원을 새 언약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힘과 능력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