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일 일요일 장년 교과]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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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했던 당시 유대인들과 달리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사역 초기에 갈릴리 지역에 있는 나사렛으로 여행하셨다. 이곳은 예수님의 고향이었는데 그 지역 사람들은 이미 그분의 사역과 기적에 대해 듣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 안식일을 지키셨다.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는 랍비는 아니셨지만, 진행을 맡고 있던 사람이 예수님께 이사야의 글이 적힌 두루마리를 건네주며 성경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61:1, 2을 읽으셨다.

누가복음 4:16~19을 읽고 이사야 61:1, 2과 비교해 보라(참조, 눅 7:19~23). 예수님께서 왜 이 말씀을 선택하셨다고 생각하는가? 이사야에 기록된 이 성경절이 메시아를 지목하는 말씀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성경절들은 메시아의 사역에 대해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종교 지도자들이 메시아의 고난에 관해 이야기하는 예언을 간과하고 예수님의 재림의 영광을 나타내는 내용을 잘못 적용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시아의 사명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메시아의 사명 진술이 이사야 61:1, 2에서부터 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세리와 같은 부도덕한 관리들, 사업을 하는 사람들, 심지어 이웃들에게까지 무시당했다. 일반적으로 가난은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되었고 그들의 불행한 상태는 죄의 결과로 여겨졌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불행한 형편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어서)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야말로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입니까?’라는 침례 요한의 질문에 답하신 내용에서 나타나듯이 그분이 메시아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의 하나였다. “구주의 제자들처럼 침례 요한도 그리스도의 왕국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예수께서 다윗의 보좌를 취하시리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구주께서 왕으로서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요한은 당황하여 근심하게 되었다”(시대의 소망, 215).

<묵상>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사랑하시는 자로서 선언하신 메시아의 사명(사 61:1, 2)은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가지게 합니까?

<교훈>
가난을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했던 당시 유대인들과 달리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적용>
우리가 생각하는 경건과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경건은 차이가 있습니다. 약 1:27의 말씀은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고 있습니까?

<영감의 교훈>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도 전파돼야 – “가난한 자와 배우지 못한 자들은 돌보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을 아무도 가져서는 안 된다. 올바른 전도 방법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도 이런 자들을 배제(排除)하지 않을 것이다. 복음이 가난한 자에게 전파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메시야가 되신 증거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 이 시대를 위한 특별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하여 연구해야 한다.”(복음 전도, 552)

<기도>
제가 처한 삶의 현실에만 몰두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중요한 사명을 잊고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저와 제가 속한 교회가 주변에 있는 가난한 자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미는 사명 공동체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