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일 월요일 예수바라기] 시편 116편 경건한 자의 죽음이 귀중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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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시 116:15).

죽음 앞에서

시인은 죽음 앞에 서 있던 때를 기억합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3절)에 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 영혼을 건지소서”(4절)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망의 줄”은 다가오는 죽음의 고통에 속박되어 고통과 괴로움을 느끼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스올의 고통”은 더 이상 사망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막다른 길을 말합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기 때문에(5절), 시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고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셨”(8절)습니다. 시인은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12절)라는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모든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 것을 맹세하였습니다(14절).

죽음 가운데서

시인은 분명히 죽음의 문턱에 있었지만 죽지 않고 구원함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여호와를 열렬히 찬송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15절)라고 노래합니다. 지금 시인은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것에 대한 단서 두 가지를 다음 구절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16절에서 시인은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3절의 사망의 줄을 푸는 일과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는, 19절에서 시인은 자신의 서원을 예루살렘의 한가운데,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겠다고 노래합니다. 성전 뜰은 인류를 위한 속죄양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였습니다.

정리해 보면, 시인은 자신을 구원해 주신 여호와께 감사의 서원을 드리러 갔다가 성전 뜰에서 어린 양의 죽음을 목격했을 것이고, 바로 거기서 자신이 어떻게 사망의 결박에서 벗어나게 될지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시인은 어린 양의 죽음을 보았을 때에 자신의 죽음도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주의 종이 되어(16절) 주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죽음을 주께서 귀중히 보실 것을 확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도) 나의 사망의 결박을 푸신 주의 죽으심을 바라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