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죽게 되었다가 나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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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계 13:3)

역사적으로 재림교회는 요한계시록 13장 3절이 특정 교황 개인이 아닌 로마 교회 체제를 언급한다고 여겼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전쟁은 로마 가톨릭의 권위에 정면으로 맞섰다. 1798년, 교황 비오 6세가 프랑스군에게 끌려가 투옥된 이후로 교황권은 130년 넘게 그 어떤 세속적 권위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죽게 되었던 상처”를 입었던 그 세력이 1929년 2월 11일 라테란 조약과 함께 극적으로 회생했다. 피에트로 가스파리 추기경과 이탈리아 총리 베니토 무솔리니가 맺은 해당 조약에서는 바티칸 시티를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고 교황을 그 지역의 수장으로 세운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1984년에는 교황의 정치적 입김이 한층 강해졌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미국과 교황청 간에 정식 수교를 맺은 것이다. 바티칸이 세계정세의 패권을 거머쥐기 위해 어떠한 전략을 사용하는지 맬러카이 마틴은 자신 저서 『피의 열쇠』에서 낱낱이 밝혔다. 『타임』지가 1994년 올해의 인물로 요한 바오로 2세를 선정한 것도 전혀 놀라울 게 없었다. 2015년에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미 국회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연합”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의 교회만을 세우셨고” 그 교회가 바로 “베드로의 후계자 그리고 그와 성찬을 나누는 주교로 구성된 가톨릭교회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후에 진행된 초교파적 대화와 다양한 종교 간의 대화에서는 여러 종교를 로마 가톨릭과 연대시키려고 노력했다.
교회와 국가 모두의 우두머리인 교황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없다. 종교와 세속적인 권력의 결탁으로 과거에 종교 자유가 위태해졌고 마지막 때 그런 일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계 13장). 자유는 잃어버린 뒤에야 그 가치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모두의 종교 자유를 위해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세담/박유진 선교사 부부(대만)
설립 5주년이 된 루주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