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수요일 장년 교과] 남은 이야기 (사 37: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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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셔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원수를 물리치셨다. 그렇게 해서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 이어질 수 있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사 37:36).

산헤립은 유다의 46개 성읍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며, 유다 왕 히스기야를 “새장의 새처럼 그의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두었다.”고 그의 연대기에 기록했다. 그러나 곳곳에 기념비를 세워 자신의 업적을 알리는 그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어떤 문서나 벽화에도 예루살렘을 정복했다는 주장은 없다. 놀랍게도 산헤립의 막강한 세력에 대항하여 히스기야가 반역을 주도했었다는 사실이 생략되었다. 앗수르에 대항하는 반역은 곧 생명의 단축과 소름끼치는 죽음을 의미했다.
성경의 기록이 아니더라도 분명히 기적이 일어났음을 학자들도 인정한다. 적수가 없었던 산헤립이 그의 왕궁 벽에 라기스를 포위했던 장면을 생생하게 새겨놓은 것은 체면을 살리기 위한 장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이 벽화에는 라기스 대신에 예루살렘이 그려져 있을 뻔했다. 성경은 산헤립이 하지 않은, 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사 37:21~37).
하나님은 온전한 믿음으로 드린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유다를 위한 완전한 보증의 기별을 그에게 보내셨다. 그것은 감히 왕의 왕이신 분을 공격한 거만한 앗수르 왕에 대한 진노의 기별이었다(사 37:23).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방어하시겠다는 약속을 신속하게 이루셨다(왕하 19:35~37, 대하 32:21~22, 사 37:36~38).
큰 위기가 큰 기적을 낳았다. 무려 18만 5천 명이나 되는 적군이 쓰러졌다. 그리하여 산헤립은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죽음을 맞이했다(사 37:7~38에 나오는 이사야의 예언과 비교해보라).

교훈 :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셔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원수를 물리치셨다. 그렇게 해서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 이어질 수 있었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 여호와의 사자 한 명이 거대한 군대를 상대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대의 눈에 태산 같아 보이는 문제들이 하나님의 눈에는 얼마나 간단해 보일까요?
(이어서) 만일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정복했더라면 그는 백성을 이주시켰을 것이고, 유다는 북방 이스라엘과 같이 정체성을 잃고 말았을 것이며, 메시아 탄생을 소망했던 유대인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소망의 불씨를 살려주셨다.

적용 : 지금 그대를 에워싸고 있는 문제들은 무엇입니까? 그대는 그것들 때문에 낙망하기보다 오히려 어떤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까요?

영감의 교훈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 – “히브리인의 하나님께서 거만한 앗수르 사람들을 이기셨다. 여호와의 영광은 인근 열국의 목전에서 입증되었다. 예루살렘에서는 백성들의 마음이 거룩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그들의 구원에 대한 열렬한 호소에는 죄의 자복과 많은 눈물이 섞여 있었다.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그들은 전적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였고 하나님은 그들을 실망시키시지 않으셨다”(선지자와 왕, 362).

기도
아버지, 제 눈을 열어주시옵소서. 저를 둘러싸고 천사의 군대를 보여주시옵소서. 그들이 원수들을 물리치고 있는 모습을 보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승리를 기뻐하며 구원해 주시는 은혜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