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 화요일 예수바라기]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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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창 47:1)

하나님이 친히 약속하시니 아침 안개 걷히듯 두려움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 오직 기쁨 뿐입니다. 그 기쁨으로 애굽에 도착하니 정말로 요셉이, 사랑하는 아들이 살아 있습니다!!! 이제 늙은 아버지 야곱은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랑하는 아들을 기쁨으로 만났으니 무슨 소원이 더 있겠는지요?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창 46:30).

요셉의 기쁨도 한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영영 뵙지 못할 줄로만 알았는데 꿈에도 그리던 사랑하는 아버지를 다시 만나 뵈옵고 또 기근 중에 봉양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기쁨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요셉은 그 큰 기쁨으로 아버지와 형들의 도착을 바로에게 아룁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습니다. 당시 애굽인들은 목축을 가증하게 여겼거든요. 짐승을 다루는 사람들하고는 한 상에서 식사도 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바로 그 가증한 자 곧 목축을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들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애굽의 바로 앞에서 당당하게 ‘내 아버지와 내 형들’(창 47:1)이라 밝히는 것입니다.

형제됨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요셉처럼 우리 주님도 우리를 가리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가증한 자’(딛 1:6)요 ‘천한 죄인’이로되 주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 2:11).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도리어 주님은 우리를 ‘내 형제’(마 25:40)라 부르시기 위하여 ‘한 아기’(사 9:6)로 이 땅에 오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사 9:6)가 우릴 ‘내 형제’라 부르시기 위하여 ‘한 아기’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형제 삼으시고는 ‘자랑의 면류관’(살전 2:19)이라 하십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 2:19).

주님은 그렇게 우리를 자랑스러워하시는데 우리가 어찌 주님을 부끄러워 하겠는지요? 애굽의 바로 앞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제 도리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기쁨으로 자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를,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시 20:7, 44: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