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목요일 예수바라기] 거의 넘어질 뻔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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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시 73:2-3).

거의 넘어질 뻔하였다
아삽은 성전에서 찬양대를 지도했던 찬양인도자였습니다(대상 25:1). 그는 시편에 12편의 시를 남김으로 다윗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를 시편에 올린 깊은 영성의 소유자였습니다. 오늘의 시편은 아삽이 후일에 “선견자”로 소개될 정도로 그런 깊은 영성을 소유하게 되는 인생의 중요한 한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의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는 말씀은 아삽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통적인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삽은 믿음이 거의 넘어질 뻔했다면서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입니다(2절).

악인을 부러워하다-
아삽이 그렇게 흔들리는 이유는 악인들이 형통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고난도 없고 재앙도 받지 않고 살다가 죽을 때도 고통이 없습니다. 그들은 교만하게 살면서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11절)라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데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불어납니다. 그들을 제지할 존재는 어디에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아삽은 자기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손을 씻어 무죄하게 살아온 삶들이 헛되다고 생각합니다(4-13절). 이런 생각은 자신이 이렇게 힘들게 살아보았자 얻는 것이 무엇이냐는 그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기 인생이 손해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며, 마음대로 사는 오만한 사람을 질투합니다. 질투한다는 것은 부러워한다는 의미이고, 자기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그는 정말 거의 넘어질 뻔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아삽이 종일 재난을 당하고 아침마다 징벌을 받고 있습니다(14절). 신앙을 버릴 수는 없고 악인들의 형통하는 모습은 부러워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그는 심한 고통을 경험합니다(16절). 이런 고민이 있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시험에 들지는 않을까 차마 말은 못 합니다(15절).
문득, 럭셔리한 삶을 살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제 모습이 보입니다. 저도 지금 거의 넘어질 뻔한 곳에 있지는 않은지 고민스럽습니다.

기도) 한 번씩 거의 넘어질 뻔하는 저 자신을 주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