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절친에게 배신당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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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시 55:12, 13).

그가 바로 너다
다윗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원수가 압제하고 악인이 핍박하는 상황에서 그는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4절)라며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그는 “누가 내게 날개를 줄 것인가?”(6절의 문자적 의미)라며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다면 멀리 광야로 도망가고 싶어 합니다(7절). 그곳에서 피난처를 마련해서 폭풍과 광풍을 모면하고자 합니다(8절).
바로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가 다윗을 배신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그는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는 곧 너로다”(13절)라는 말에서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했다던 “브루투스 너마저…”의 절망이 몰려옵니다. 자기를 배신한 사람을 신뢰했으면 했을수록 그 상처도 깊습니다. 배우자, 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에게 배신당할 때, 삶은 산산이 조각나는 듯합니다.

벗어나기-
상담가들은 치유의 핵심은 용서에 있다고 권합니다. 그러면서, 용서하라는 말은 그 상대방에게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고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라는 의미도 아니고,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라는 뜻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보다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과거는 과거로 흘려보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권합니다. 좋은 말이긴 한데, 그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한 제자 유다가 겟세마네 동산으로 당신을 잡으러 왔을 때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마 26:5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유다는 여전히 친구였습니다. 또, 그분은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고 하며 이런 모든 배신의 과정을 구속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배반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하고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의지하여, 자기이 당한 일을 구원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배반한 사람을 예수님처럼 여전히 친구로 대할 때,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배반의 쓰라린 트라우마라는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삶이 흔들려도 요동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기도) 배반당한 트라우마보다 주님의 사랑과 신뢰가 제 마음을 지배하게 하소서.